20여년 전 경찰서 출입기자 때의 일이다. 광주의 한 모텔에서 20대 여대생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여대생이 회복되길 바랐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접했다.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았음에도 여대생이 숨진 이유는 바로 고독성 제초제 ‘그라목손’ 때문이었다. 이 농약은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제초효과를 가졌지만, 고독성의 파라콰트 성분이 함유돼 사람이 마셨을 경우 폐·신장 등 각종 장기를 섬유화시켜 빠른 시간 안에 사망케 한다. 2010년에만 3206명이 그라...
2023.03.01 14:37청자는 중국이 먼저 만들었으나, 그 미려함을 꽃피운 것은 고려였다. 도자기의 푸른색을 말하는 비색을 두고도 두 나라의 한자가 다르다. 송나라는 ‘황제만 쓸 수 있는 비밀스러운 색깔’이라 하여 숨길 비(秘)자를 쓰고, 고려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인데, 파랑도 초록도 아닌 오묘한 빛깔이라 하여 물총새 비(翡)자를 쓴다. 고려청자만의 ‘비색(翡色)’을 두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학자 최순우는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이라 표현했고, 글감옥 ‘해산토굴’에 스스로 갇혀 오롯이 인간 성찰...
2023.02.27 17:13썬키스트, FC 바르셀로나, 서울우유 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하면 흔히들 농협, 축협, 수협, 신협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내에 설립된 협동조합만 2만2610개(2022년 3월 기준)에 달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협동조합은 농협중앙회를 비롯해 수협·신협 중앙회와 새마을금고연합회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들 중앙조직 산하 단위조합 수는 약 6300개이고, 개인 조합원 수는 1700만명을 넘어섰다. 중복 가입이 없지는 않으나 전체 국민의 약 40%가 각종 ...
2023.02.26 14:11서로 민생을 챙기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정치권이 극한 정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대표적인 민생경제 법안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맞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쟁점 법안을 절차대로 마무리하겠다며 지난달 30일 본회의에 직회부했고,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에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정부가 쌀 매입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지난해 국내 쌀값이 45년만에 최대 하락...
2023.02.23 18:00“선비라면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여몽이 평소 자신을 경시했던 재상 노숙에게 한 말이다. 이는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없던 여몽이 당시 임금 손권의 당부에 열심히 학문을 갈고 닦은 자신감이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으로, 안 본 사이에 부쩍 재주가 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광주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KIA타이거즈가 2023시즌을 대비해 미국 애리조...
2023.02.22 18:20“병풍처럼 펼쳐진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눈 덮인 설원을 뛰어가는 노루 가족의 모습이 하나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것 같다.” 지난 2020년 제주도가 개최한 제12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설원에 노루 나들이’라는 작품에 대한 심사평이다. 실제 사진은 눈 내리는 제주의 설원을 배경으로 4마리의 노루가 뛰어가는 모습이 평화롭게 담겨 심사위원의 호평을 받았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작가의 성실함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사진은 심의 결과 합성으로 밝혀졌고 수상이 취소됐다. 기술이 만들어낸 디지털 범죄...
2023.02.21 17:05한국인은 정착성이 강한 민족이다. 농경 민족의 특성상 조상 대대로 한 지역에서 씨족공동체로 살았다. 한 마을에서 일가 친척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 형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도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귀소 본능이 강했다. 옛 벼슬아치는 늙거나 노부모가 있으면 고향이나 인근으로 벼슬을 옮겨갔다. 출세해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금의환향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성어다. 농경사회가 잉태한 뿌리깊은 정서다. 시체가 묻히지 않은 허총(虛塚)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많이 발견됐다. 생사를 모르는 망인의 머리카락이나 치아, 아니면 그...
2023.02.20 13:49얼마 전 전남대학교병원에 소아과 레지던트 2명이 들어왔다. 이 이야기를 해주던 수련교수의 표정이 어찌나 밝던지. 그도 그럴 것이 지역 병원에 소아과는 진작에 지원자가 씨가 말랐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돈 되고 환자 많은 내과는 바글바글하다. 전남대병원 2023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인턴 정원은 94명을 모두 채웠으며, 레지던트의 경우 81명 정원에 69명을 뽑아 85%의 채용률을 기록했다. 특히 그동안 지역의 문제로도 부각됐던 소아청소년과에 2명이 채용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해당 과는 지난해 단 한명도 뽑지 ...
2023.02.19 17:235·18민주화운동 일부 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가 추진하는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와의 ‘용서와 화해’ 대국민 선언과 국립5·18민주묘지 합동 참배를 놓고 지역 사회가 논란에 휩싸였다. 재야 민주 인사와 시민사회단체는 진상규명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론화 과정이 없었고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며 행사에 우려를 나타낸 반면 ,행사 주관 5·18 단체는 이번 행보가 진상규명으로 다가가는 첫 걸음이라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5·18 가해자와 피해자간 화해 수순에는 동감하나 특전사 단체의 미흡한 진상규명 의지, 진정성 없는 사과 ...
2023.02.16 17:15우리나라 대중목욕탕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와 일본인 등의 국내 거주가 늘어나면서 호텔과 여관이 생겨났고, 그들의 목욕수단에 따라 숙박시설에 욕실을 설치했던 게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근대적 형태의 대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서 처음 문을 열었는데 당시 행정관청인 부(府)에서 직접 목욕탕을 운영했으며 관리인도 따로 임명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25년 서울에서도 대중목욕탕이 첫 선을 보였다. 광복 이후 인구가 증가하고, 위생관념이 강조되면서 대중목욕탕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영업허가를...
2023.02.15 14:50‘영상미학으로 녹여낸 깨달음의 절정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튀르키예를 직접 가보고 싶었던 것은 지난 2015년 개봉된 튀르키예 영화 ‘윈터 슬립’ 때문이었다. 튀르키예 아나톨리아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아이딘. 젊은 아내와 이혼한 여동생이 벌이는 갈등과 함께 펼쳐지는 화려한 영상의 향연은 압권이었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 시간, 자연의 변화가 만든 기암괴석도 튀르키예를 향한 동경을 자극했다. “튀르키예의 자연은 지구의 자연이 이니다.” 이곳에서 ‘스타워즈’를 촬영했던 조지 루카스 감독의 이야기다. 튀르키예는 ...
2023.02.14 17:01두장의 그림이 있다. 흑백과 컬러,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구도와 내용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림이다. 흑백그림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에게 무릎을 꿇고 마실 것을 주고 있는 튀르키예 군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다른 컬러그림에는 최근 최악의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튀르키예 아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있는 한국 긴급구호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그린 한국인 만화작가 명민호씨는 자신의 인스타 계정에 그림과 함께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 깊은 애도를 그림으로나마 전한다. 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2023.02.13 18:32인문대 앞을 지나가는 중년의 교수 눈빛에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굳게 다문 입은 어떤 고난에도 맞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예’라는 답보다 ‘아니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것같은 분위기였다. 국문과 수업을 받진 않았지만 후배를 따라가 강의를 들은 적 있다. 87년 6월항쟁 이전이었고 독재정권의 폭력, 80년 5월항쟁 당시의 고통, 뿌리깊이 내재된 호남 차별에 대한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 쯤이다. “형한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어요”. 1학생회관 서클룸에서 이념활동을 하던 후배였다. “무슨 책인데” ...
2023.02.12 14:51계묘년 새해 벽두 최대 화두는 급등한 난방비였다. 지난해 12월분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담긴 도시가스 요금 부과액을 보고 많은 지역민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눈치다.예년 겨울철에 비해 2~3배 정도 증액됐기 때문이다. ‘난방비 폭탄’에 여론이 심상치 않자 정부와 정치권은 부랴부랴 난방비 지원대책을 내놓는 등 부산을 떨었다.이런 와중에 구례군 농촌마을에서 ‘도둑 전기 사용 논란’이 빚어졌다.한국전력공사는 최근 농사용 전력을 적용받는 소형 저온저장고에 김치, 두부, 메주 등 가공식품은 보관 대상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례에서 위반...
2023.02.09 17:58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국을 찾았을 때 윤석열 대통령에게 ‘The Buck Stops Here’란 문구가 적힌 패를 선물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으로,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이 재임 중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아뒀던 패를 본 따서 만들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트루먼의 명언으로 유명한 ‘The Buck Stops Here’라는 글귀를 인용한 게 선물의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은 방송에서 트루먼의 탁상용 패를 얘기하며 “많...
2023.02.08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