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인마을 모습. |
정부는 오는 21일부터 주민등록상 내국인을 기준으로 15만~52만원의 소비쿠폰을 지급한다.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난민 인정자 등 일부 외국인은 예외적으로 포함됐지만, 재외동포(F-4 비자) 소지자와 단기체류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재정 여건과 행정 효율성을 이유로 들며, 모든 외국인을 포함할 경우 행정 혼선과 형평성 논란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거주자 7000여 명(동포 비자 3700명)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소비쿠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들 대부분은 제조업·농장·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성실히 세금을 내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입국한 고려인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전국적으로 거주 중인 고려인은 약 8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한고려인협회(회장 정영순)는 지난 11일 청원서에서 “재외동포를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반복되는 차별적 조치”라며 “동포로서 성실히 세금을 내고 의무를 다하고 있는 만큼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순한 소비쿠폰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진정한 사회통합을 원하는지 묻는 시험대”라며 “진정한 사회통합과 공정 실현을 위해 대통령께서 F-4 비자 소지자를 포함한 국내 거주 동포 전원에게 평등한 지급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13일 기준, 대통령실은 해당 청원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고려인마을 상담소를 운영하는 이천영 목사는 “정부의 소비쿠폰으로 지급되는 25만~50만원은 주민들에게 생활비로서 상당한 금액”이라며 “정책이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외되면서 공동체 내부의 실망과 피로감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같은 배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에도 재외동포·난민 인정자 등은 제외됐고, 고려인마을은 마스크 배부나 백신 예약 등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였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는 난민 인정자를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한 조치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난민 인정자는 이번 소비쿠폰에서도 예외적으로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해당 판례가 고려인 배제 문제 또한 평등권 침해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근거가 된다고 제언했다.
모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행정적 편의나 국적을 이유로 역사적·문화적 연대가 있는 동포를 배제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고려인은 단순한 다문화정책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므로, 합리적 차별이 가능한지 헌법적 기준에 따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채 국제이주문화연구소 부대표 역시 “현행 재외동포법이 해외 거주 동포 중심으로 설계된 탓에, 국내 거주 고려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정책을 국적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동포들이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면 기뻤겠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운 건 사실”이라며 “선조들의 땅에서 같이 살아가는 고려인 동포 모두가 국적을 취득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산구 등 지자체도 자체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하다. 광산경찰도 고려인마을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광산구 관계자는 “정부 방침상 재외동포 비자를 가진 고려인들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예외 사례가 있을 수 있으니 정부의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는 대로 지급 대상 여부를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김명수 광산구의회 의장은 “고려인들은 영주권은 없지만 지역사회 산업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원 대책을 마련한다면 구의회 차원에서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 광주 광산구 홍범도공원(다모아어린이공원)에 세워져 있는 홍범도 장군상 앞에서 고려인 마을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정성현 기자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