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승현>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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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이승현>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 입력 : 2025. 04.02(수) 18:08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겨울옷들을 벗어 모으니 방안이 옷들로 가득하다. 패딩 점퍼와 방한용 바지에 모자, 장갑, 내복까지 20여 개나 된다. 봄옷을 추리니 포장도 뜯지 않은 옷들까지 서랍장 구석에 박혀 있다 줄줄이 나온다. 내친김에 장롱에 쟁여진 모든 옷들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마흔 살, 쉰 살 때 내 몸과 체면을 감쌌던 옷들, 승진 기념으로 맞춰 입은, 안쪽 주머니에 새겨진 한자이름이 있는 양복까지 거미줄을 달고 나온다. 나프탈렌에 절어 있는 옷들이 산더미다.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해변에는 옷과 섬유로 쌓인 20미터 높이의 쓰레기 산이 있다. 옷 쓰레기 산에서 검은 소와 흰 소가 모여 풀을 뜯듯 옷의 잔해를 먹고 되새김질하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에는 헌 옷 무덤도 있다.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아크라의 해변 옷 쓰레기 산과 아타카마사막의 헌 옷 무덤은 남의 나라 문제만은 아니다. 약 50여 조 원 규모의 패션 시장 규모를 가진 한국은 세계 5위의 중고의류 수출국이고 약 30만 톤의 중고 의류를 인도, 나이지리아, 캄보디아 등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재활용 여부는 추정이 어렵다고 한다. 폐 의류는 통계관리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옷은 재활용하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가 종이는 종이대로, 페트병은 페트병끼리 분리배출을 하는 이유는 재활용을 위한 것인데 패딩 같은 경우 외피, 내피, 단추, 지퍼, 충전재 등으로 분리하려면 많은 인력과 돈,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 그럴만한 여력이 안 되다 보니 일반 쓰레기보다도 못하게 방치되고 있다.

더구나 우리가 입는 옷의 70%는 합성섬유인데 유해물질로 인해 내분비계 장애를 유발하고 플라스틱 섬유조각이 미세먼지로 변해 호흡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가거나 하수로를 통해 바다로 유출된다.

해외로 중고 의류를 수출하고 기부한다고 하는데 쓰레기가 되고 환경오염체가 되는 것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것이 과연 수출이라고 하고 기부라고 포장할 수 있는 것인가?

의류 산업이 환경오염 산업 2위로 등장한 주요인으로 패스트 패션과 소비문화의 변화가 지적된다.

2022년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 의하면 매년 1000억 벌의 옷이 생산되고 330억 벌이 버려진다고 한다. 입지도 않은 새 옷의 30%가 1년 안에 사라지는 것이다.

패스트패션은 의류를 일회용품처럼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해외여행 시 짐을 줄이거나. 귀찮아서 입던 옷들을 가져가지 않고 현지에서 사서 그냥 버리고 오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고 폐기해버리는 경우도 일상이 되었다. 의류 소비량은 두 배로 증가하였는데 옷 한 벌의 수명은 반으로 줄게 된 것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8층짜리 의류봉제 공장건물이 무너져 1100여명이 죽고 2500여명이 다쳤는데 노동자들의 시급은 단 260원에 불과 했다. 자라, 유니클로, H&M 같은 패스트패션 기업은 물론 아르마니, 랄프로렌, 베네통 같은 명품 브랜드들도 개발도상국들에서 옷을 생산한다. 이들은 오로지 이윤을 위해 지구와 노동자를 착취한다. 물론 파타고니아 같은 비교적 윤리적 기업도 있긴 하다. 소비가 있어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물량의 옷을 만들어 소비를 강제한다.

옷은 단순히 입는 것을 넘어 한복이나 아오자이, 기모노처럼 한 국가의 상징이 된다. 샤넬이나 프라다처럼 세계적 산업이 되고,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처럼 문화와 예술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필수품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옷이지만 옷 한 벌 가격이 1000만원을 넘어 입는 자와 못 입는 자간 옷 계급을 만들기도 하고, 특정 명품 브랜드 옷을 고집하는 자녀들 때문에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골프복, 등산복을 겸용으로 입으면 촌스럽다 하여 따로 사게 만드니 옷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지인의 장례식 때 삼베수의를 입히느라 수 백 만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우리 장례문화에서 삼배수의는 표준이 된 상태인데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가장 좋은 옷, 비단을 입혔고, 혼례 때 입었던 원삼도 수 십 년을 보관하다 수의로 입었다고 한다. 원래 삼배수의는 부모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인이자 불효자라는 의미로 상주나 가족이 입는 옷이었는데 변질된 것이다. 2~3일 입다 태워 버릴 텐데 고인이 평소 아끼던 옷으로 수의를 하면 좋지 않겠는가.

‘옷을 사지 않겠습니다’의 저자 이 소연은 의류산업이 지구 환경과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점점 거대해져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오래 입기, 쟁여놓지 말고 보이도록 걸어 놓기, 옷 소비 줄이기 등 사소하지만 옷 소비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실천할 만한 여러 방법을 제시해 준다. 크게 공감하여 이 글의 제목도 이 소연의 책 제목에서 따왔다.

“14도의 날씨엔 경량 패딩 재킷이나 니트를 단독으로 입어도 좋고 추위를 많이 타는 분들은 트위드재킷을, 캐주얼한 무드를 선호한다면 윈드브레이커가 적합하다. 에어 쿨링 포켓 샤론 부츠컷이나 로저스 퍼포먼스 메시 후디 집업으로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아이템을 추천합니다.”

어떤 곳에서 올봄 입을 옷을 추천한 것인데 요즘 옷은 이렇게 입어야 세련되고 우아하다고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매일 입는 옷이니 체형에 어울리게 잘 입고(실용성) 멋지게 입는 방법이나 옷 재활용, 폐기 방법은 왜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

옷은 사람의 몸을 보호하고 아름다움과 품위를 높이는 기물이기도 하고 문화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이윤추구, 과잉, 소비습관이 문제가 된다. 수십 벌의 겨울옷을 보면서 입지도 않은 옷을 산돈이 아깝기도 하고 어릴 적 기워 입고 형한테 물려 입던 옷 때문에 엄마에게 새 옷 사달라고 떼쓰던 궁핍했던 때를 잊어버리고 사치한 아쉬움도 있다. 종일 옷들과 씨름하면서 나들이와 행사가 많은 봄이지만 기분전환용이나 과시용, 계절 맏이용으로 옷을 사지 않겠다고 작정해 본다. 봄이 오자마자 바로 여름이 된다니 봄옷은 별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 올해 봄옷은 사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