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남도, 한국 도자문화의 본향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서석대>남도, 한국 도자문화의 본향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5. 03.30(일) 17:08
  • 최도철 미디어국장
최도철 미디어국장
 산 좋고 물 맑은 남도는 예로부터 도기와 자기를 만들기에 참 좋은 땅이었다. 영산강 삼백리 물줄기 따라 펼쳐진 너른 들판은 질 좋은 태토를 선물했고, 깊은 산자락을 내려 푼 지리산, 무등산, 월출산, 천태산은 풍부한 땔감을 제공했으니 도자문화를 꽃피우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한국 도자문화의 원형이요, 본향인 남도는 광주 무등에서 땅끝 해남, 고흥반도에 이르기까지 도자문화가 융성한 지역이 여러 곳 있다.

 널리 알려진 문화자산으로는, 그릇에 최초로 유약을 바른 ‘영암 시유도기’, 서민들의 고려청자 ‘해남 녹청자’, 추상과 해학 그리고 질박한 서민의 정서가 밴 ‘무안 분청사기’, 조선 도자기의 정점 ‘장흥 백자’, 왕실에 공납했던 남도 분청의 진수 ‘무등산 분청’ 등이 대표적이다. 개중에 으뜸은 명실공히 천하제일 고려비색 ‘강진청자’라 할 수 있다.

 청자는 중국이 먼저 만들었다. 남북조시대 월주(越州)의 도공(陶工)들이 유약을 사용해 처음 만든 것이 최초다. 신라 장보고는 월주청자 제작 기술을 탐진(강진)으로 들여왔고, 고려시대 천하제일 비색으로 꽃피웠다.

 강진청자를 두고 천하제일로 치는 것은 옛 문헌에도 나와 있다. 고려 인종때 개경에 머물었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 비색청자를 대면하고,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인데, 파랑도 초록도 아닌 오묘한 빛에 반해 북송의 황제 휘종에게 그 존재를 알렸다.

 탐진에서 생산된 청자는 바닷길을 통해 송나라로 건너가기도 했다. 당시 문화최강국 송나라 귀족들도 고려청자를 보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이는 남송의 선비 태평노인이 쓴 ‘수중금(袖中錦)’에도 기술됐다. 세상에서 최고인 것만을 소개한 수중금 ‘천하제일’편에 단계의 벼루, 정요의 백자, 낙양의 모란, 건주의 차, 촉의 비단 그리고 청자는 고려의 비색을 으뜸으로 쳐 기록한 것이다.

 국내 대표 분청사기전시관인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실’이 새 단장을 마치고 며칠 전 다시 문을 열었다. 광주시가 청자에서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도자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무등산 분청사기 유적’에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충효동 요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완벽한 형태로 발굴된 가마터다. 청자, 분청, 백자 등 도자문화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특히 ‘어존’, ‘내섬’ 등 명문이 새겨진 자기가 발견돼 왕실과 관청에 납품된 최고급 도자기 생산지였음이 확인됐다.

 봄바람 싱그러운 날, 무등에 올라 누천년을 살아온 우리 선현들의 그윽한 정서가 담겨있는 도자문화를 들여다 보는 것도 꽤 괜찮은 마실일 듯하다.
최도철 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