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난 7일,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되는 순간을 목도했다. 며칠 내내 느꼈던 원인모를 우울과 분노는 더욱 더 깊어졌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희망에 대해 생각하기로 한다.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자신의 책 ‘희망의 원리’를 통해 희망을 다섯가지로 정의한다.
블로흐에 따르면 인간은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희망을 먹고 살며,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삶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희망은 힘이며,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삶을 포기하지만 희망이 있는 사람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극복하게 된다. 희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것이며, 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을 약속해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희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는 구절을 천천히 되뇌어본다. 블로흐는 희망은 저항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희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인간은 ‘보다 나은 가능한 삶’에 대한 희망을 통해 현실의 억압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피하는 대신 직면하며 이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 가진 힘이다.
어쩌면 우리는 희망을 잠시 포기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계속된 비합리와 이해되지 않는 현실에 희망 대신 포기를,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 대신 오해하는 방식을 선택하며 누가 문제인지 손가락질 하는데 집중하는 일들이 반복됐으니까.
하지만 1980년 광주 전남도청 앞, 2016년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서 우리가 배운 희망의 불씨가 올해 다시금 타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쓰러져간 많은 이들이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희망 위에서 우뚝 서 또 다른 희망을 외치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을. 희망을 지키기 위해 함께 손잡고 함께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크나큰 위로가 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12월3일 이후 국민들이 바라던 단 하나의 소망이, 희망이 선물로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14일 서울로 향하는 모든 발걸음에 희망이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