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엘 쇼안느 작 ‘나를 부드럽게 먹어 줘(블랙 유니콘)’. 광주비엔날레 제공 |
●후각 작품·가엘 쇼안느 작 ‘비석’(3전시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콘크리트 패널의 그림은 유령 같은 장소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전시장 바닥에 놓여있는 과일은 작가이자 활동가인 오드리 로드의 시 ‘블랙 유니콘(1978)’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국 제철 과일에 새겨 넣은 작품 ‘나를 부드럽게 먹어 줘(블랙 유니콘)’다. 새겨진 시는 과일이 부패함과 동시에 사그라든다. 두 작품은 지진과 허리케인 등 숱한 자연재해로 파괴되고 버려진 구조물의 잔해와 폐허를 포착해 기후적 비탄을 기리는 제단 안에 바치는 헌사로 조응한다.
오스왈도 마시아 작 ‘바람과 먼지와 숨결을 후각적 음향 구성’. 광주비엔날레 제공 |
반구형의 무대에 거칠게 쓰인 한글 ‘혼돈, 이주, 나비, 호흡, 모래, 바람’은 작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것들과 상응한다. 세계 여러 사막을 이주하는 바람의 소리를 수집해 합창단의 울림과 함께 재생한다. 반구형의 구조물 위 의자에 앉아 있으면 사막을 지나가는 고요한 바람의 소리뿐만 아니라 자작나무의 은근한 향도 풍겨 나온다.
●후각 작품·로리스 그레오 작 ‘신성 급행열차’(5전시실)
5전시실에 들어서면 나는 은은한 향은 매일 15분 동안 로리스 그레오의 작품이 작동하며 풍기는 향이다. 포름산 에틸 분자를 활용해 미지의 은하를 간접적으로 경험케 한다.
브리아나 레더버리 작 ‘무거운 짐’. 광주비엔날레 제공 |
브리아나 레더버리는 금융과 부동산을 움직이는 신념 체계를 탐구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논리에 속한 자산가들이 아끼는 물건을 구리도금으로 박제해 그들의 신념과 그 실체에 접근했다. 이번 작품에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나무 캐비닛에 구리를 입힌 작업을 커다란 산업용 냉장고 안에 전시했다. 전 세계 식량 혹은 물품을 옮기던 수단의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며 쾌적한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가치의 위계가 급변하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미각 작품·김자이 작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양림 소리숲: 양림문화샘터)
김지아 작가는 질병의 기억으로 휴식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됐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텃밭 가꾸기를 적용한 설치작품이 자리한다. 전시 기간 허브를 수확해 인근 카페에 가져가면 작가가 고안한 허브 음료를 만들어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참여자가 음료를 위한 재료를 전시장에서 수확하고 카페로 가져갈 때는 도보로 이동해야 했는데 모든 과정은 친환경적이면서 일종의 협동이 필요하다. 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음료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직접 마셔보는 경험에서 참여자들은 같은 것을 이행하는 유대로 연결된다.
김자이 작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 광주비엔날레 제공 |
나무 스피커로 놓인 공간에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르메니아계 리투아니아인인 작가 안드리우스 아루티우니안은 같은 아르메니아계 그리스인이면서 철학자이자 작곡가인 게오르기 구르지예프의 즉흥 연주를 녹음한 테이프를 100배 느린 음향 작품으로 재현했다. 신비주의자였던 게오르기 구르지예프는 1940년대 파리의 아파트에서 의식적인 행사 겸 모임을 수없이 주최했고, 이때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인 하모니움으로 한 즉흥 연주를 즐겼다. 1949년 당시 몽롱한 소리를 내뿜던 연주가 녹음된 19시간에 달하는 테이프를 아루티우니안의 해석이자 구르지예프에 대한 오마주로 총 5시간에 걸친 소리로 구현했다.
안드리우스 아루티우니안 작 ‘무제’. 광주비엔날레 제공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에게 “이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 어떤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에 대한 답으로 고른 노래와 소리가 드로잉 머신을 움직이는 플레이리스트로 구성됐다. 드로잉은 기계가 듣고 있는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반응으로 작동한다. 드로잉의 형태나 이어지는 곡선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계가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지 연상할 수 있다. 전시 기간 내내 다른 드로잉을 그리는 작품은 음악을 듣고 움직이는 중인데, 해당 플레이리스트는 관람객에게 들리지 않는다.
●청각 작품·마리 만 작 ‘음의 눈, 눈의 음’(양림 소리숲: 빈집)
빈집 2층으로 올라가면 하얀 장지를 바른 벽면과 바닥에 먹을 찍은 붓으로 지나간 자유분방한 검은 선들로 채워진 방이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을 통해 먹으로 선이나 그림 등을 자유롭게 그리는 참여형 작업은 전시 기간 내내 다른 모습으로 자리한다. 반대편 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비디오 작품과 소리는 빈집 외벽에 새겨진 유교 명문을 번역하고, 이 글에 대한 응답으로 의성어로 된 판소리 기반의 음향 작품이다. 한 공간에 펼쳐진 비디오와 사운드, 참여형 드로잉이 결합된 복합적 작품은 관람객들의 감각을 열게 한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