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 1930년 3월13일자 보도와 하와이한인협회 ‘공보 5호’ 다. 김 교수팀이 이를 분석한 결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250여 명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는 하와이한인협회를 결성하고, 분열된 한인단체들을 통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한민보 보도에 따르면 1930년 1월13일 하와이 오아후 섬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알려지자 한인 29명이 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취지의 발기인 회의를 진행했다. 같은 해 2월에는 참여 인원이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하와이한인협회의 1대 주의와 3대 정강도 찾아냈다. 이 가운데 1대 주의는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대한독립운동을 추진하다’였다. 3대 정강 중 제1조는 임시정부에 집중하고, 제2조는 운동의 방략은 최후의 1인까지 분투하고, 제3조는 상해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으로 통일한다는 내용이었다. 신한민보에 나온 발기 취지문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미년 3·1만세운동 이후 제2차 독립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구팀은 또 신한민보에 나온 하와이 한인협회에 참여한 회원들의 명단을 분류한 별도의 자료도 만들었다.
95년 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독립운동은 모두가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다.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호남의 청년 학생과 수많은 호남 민중이 이뤄낸 거국적인 독립운동이기도 하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제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앞장서 써내야 한다. 광주와 호남의 자긍심이면서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영웅들의 발자취를 민간에만 의존한 채 외면해선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