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가을 하늘을 보인 29일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 가을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뉴시스 |
전쟁 중인 이스라엘의 평야 중 므깃도는 고대부터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가나안 땅 중에서도 비옥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200회 이상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필자는 14년 전에 이곳에 가서 언덕을 걸어 올라가 성문을 지나 성터, 마굿간과 곡식 저장소, 40미터 깊이 아래 지하 수로를 이용한 거대한 물저장소를 보았다. 특이한 것은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당시에는 이곳에서 지구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팻말이 있었단 사실이다. 아마겟돈(히브리어로 므깃도 언덕) 전쟁은 성경 신약의 기록에 의한 것이므로 신약을 믿지 않는 유대교도들이 이 팻말을 없앴거나 전쟁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없앴을 것이다. 세계 1차 대전 중에 1918년 9월18일부터 십여일간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연합군에게 결정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 시기에 중동지역에서 독일과 연합한 오스만 투르크(터어키)를 상대로 한 영국장교와 아랍부족들과의 연합작전을 다룬 내용이지만 한 인간의 조국에 대한 의무와 진정성과의 갈등이 깊이 있게 나타난다. 20세기 초 당시의 중동지역은 부족 중심으로 지역을 나누고 있었는데 영국은 아랍인을 도와 터키로부터 그들을 독립시킨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상 중동 지배권 다툼에 참여한 것이었다. 로렌스는 실제로 사막을 움직이면서 기록한 글과 카이로에 있던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쓴 글들을 바탕으로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아랍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희망을 품었는지 그리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기록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을 느꼈다. 영화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밝아오는 아침의 신선한 풍경은 우리를 매혹시켰다.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안개처럼 쉽게 사라져버리는 이상 때문에 몹시 지치고 힘들었다….마침내 우리가 이상을 실현했을 때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다. 늙은이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서 우리의 승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전의 세계와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나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아주려 노력했다. 2억이나 되는 셈족에게 민족적 사고라는 정신적인 꿈의 궁전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고 싶었다…하지만 우리가 승리하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석유를 독식하고 있는 영국의 채굴권이 위협받게 되고 레반트 지방을 장악한 프랑스의 시민정책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우리는 석유채굴권이나 식민지 따위를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자랑스럽고 순진무구한 생명들을 희생시켰다.- T.E. 로렌스 ,<지혜의 일곱기둥 1>, 최인자 옮김, 웅진 문학에디션-
책의 서문에 있는 그의 입장을 옮겨보았다. 영국 내각은 아랍 자치 정부 수립을 보장한다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고 영국의 계획대로 아랍 부족의 권력자들은 연합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쫓았다. 영국 장교로서 로렌스는 국가의 일을 수행하나 아랍민족이 통합하여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기를 진정으로 바랬다. 만약 그의 바람대로 아랍민족이 그들의 단일한 사고 아래서 새로운 출발을 했더라면 지금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이후 위선적인 영국정부의 비정직성에 그는 실망했으므로 국가가 주는 어떤 보상도 거부했다. 그는 아랍인들과 모래폭풍 몰아치는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에 타고 밤에는 차거운 이슬에 젖었을 것이고 별들 가득 메운 하늘 밑에서 한없이 작은 인간 존재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1년 전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4만200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았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피난민으로 몰았다. 하마스는 최근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겠다고 선언하고 헤즈볼라는 드론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와 곳곳을 공격하면서 이란과의 대규모 충돌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숫자로 보면 사람의 죽음도 개념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내 가족이 죽는다면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