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정상연>다시 또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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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정상연>다시 또 걷고 싶은 길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4. 10.10(목) 10:48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서로 걷는 길은 달라도 결국 최종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는 의미의 관용구로 쓰이기도 하고, 또 로마의 번영과 영향력을 강조하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져 있기도 한다.

서양문명의 중심, 3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는 오래전부터 길을 내고 수로를 건설하는데 최선을 다했었다. 특히 기원전 312년에 착공된 ‘아피아 가도(Via Appia)’는 로마를 대제국으로 발전시키는데 초석이 되었고, 이는 로마의 정치, 경제, 군사적인 번영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로마 위명(威名)을 떨치는 중요한 결과물이 되었다.

로마는 도로의 지형을 잘 활용하여 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게 했고 여의치 않을 때는 다리를 놓거나 터널을 뚫기도 했다. 평탄화 작업은 물론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배수로를 만들었고 일정 거리마다 밀리아리움(Miliarium)이라는 도로 표지판을 설치했다. 또 길을 따라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었고 대략 20km마다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여관이나 우체국 등을 설치했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럽 곳곳에서는 당시 로마의 도로를 개보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를 에둘러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도로망은 혈관과도 같은 것이다. 혈관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그만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도로도 그러하다. 필자는 가끔, “저런 곳에까지 길이 있을까?”라고 의문이 생기는 곳, 저 구석구석까지 길이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때, 참으로 신기하고 절로 감탄할 때가 있다.

다만 길은 단순 자동차를 위한,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개념은 차도와 보도를 포함한다. 여기에는 사람이 있다. 모든 길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길에는 굽이굽이 살아온 이야기가 있고, 내일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은 다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책을 보며 거닐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때로는 누군가의 말에 집중하며 걸을 때도 그 길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니 안전해야만 한다.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의 모습에 행복한 가족들의 웃음이 그 길에는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정 거리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나 광장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길을 걷다 지치고 힘들 때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그곳은 볼거리와 놀거리, 먹거리가 함께 있으면 더 좋겠다. 이동 중에는 본인들의 위치나 주변의 정보가 한눈에 파악될 수 있는 이정표나 안내판도 설치되어야 한다. 이왕이면 다양성을 고려한 외국어도 표기되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길 위에 담긴 여러 매력을 느끼면서 누구나 안전하게 귀가하길 바라는 것이다.

여러 지자체들이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가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선언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보행자가 거닐 수 있는, 또 다시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예로 영국은 아무리 복잡하고 좁은 길이라도, 차도가 없어질지라도 어디서나 최소한 2m 정도의 보도는 확보하게 되어 있다.

우리도 사람 중심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보도블록을 평탄하게 하고 턱을 낮춰 휠체어나 유아차도,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누구나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 길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선을 가려 안전을 위협하고 미관을 훼손하는 불법 현수막과 적재물들도 정비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횡단보도나 어린이보호구역의 불법 주·정차는 더욱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걷고 싶은 도시는 교통과 도로 행정, 안전, 문화, 경제, 관광 등 도시 생활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람이 거니는 길, 보행 부문에 대한 인식전환과 통합적 관점의 정책이 꼭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길은 로마가 아닌 사람이 사람에게로 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