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도봉구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을 방문해 소비자 물가 등을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
오늘날엔 쌀밥을 먹지 못해 굶주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밥 굶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책의 첫 장 ‘밥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 살아’에선 ‘밥 없이 살 수 없는’ 한국인들의 쌀밥을 향한 유별난 애정을 살피고, ‘가족과 함께 흰 쌀밥을 먹고 싶다’는 열망이 한 시대를 이끈 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쌀에 이어 ‘물의 무게와 소비, 물장수부터 생수 배달까지’에서는 물장수에게 물을 사 먹던 시절부터, 수돗물을 처음 이용하게 된 일제시기를 거쳐, 생수를 집 앞까지 배송해 먹는 현재까지 한국인의 물 이용 역사를 들여다보며 ‘물장수’와 ‘생수 배송’ 사이, 세기를 넘어서는 기시감을 이야기한다.
‘라면 시장의 맞수, 삼양식품과 농심의 혈투’는 탄생 이후부터 현재까지 각광받는 음식인 라면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라면 산업의 양대 산맥인 삼양식품과 농심의 라면 개발부터, 라면으로 인한 기업의 흥망성쇠까지를 아우르며 한국 현대사를 살펴본다.
밥과 물, 그리고 라면을 먹은 뒤 누구나 손쉽게 접하는 커피를 현대사 속에서 살펴본 ‘누구나를 위한 같은 맛의 한 잔’이 이어진다. 미군 부대에서 몰래 빼돌려 먹던 커피가 커피믹스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커피가 어떻게 현대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먹거리가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주소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당신이 꿈꿔 온 강남의 탄생’은 중요한 소비재이자 투자처가 된 ‘집’ 소비의 역사를 정리해 본다. 그중에서도 강남으로 대표되는 신도시 개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현대 한국인의 욕망을 파헤친다.
집을 소유하게 되면 가장 먼저 소비하게 되는 물건이 가전제품일 것이다. ‘마, 느그 집에 냉장고 있나?’는 냉장고, TV, 세탁기, 청소기 등 현대인의 필수 가전제품이 어떤 과정과 욕망을 배경 삼아 소비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취하고 싶다’는 밥과 물, 라면과 커피에 이어서 또 다른 먹을거리로서 술을 다룬다. 일반적이지 않은 소비재로서 술이 어떤 이유로 한국인들의 정서적 목마름을 해소해 주고, 현대사와 함께해 왔는지를 뜯어본다.
앞선 글들이 주로 생필품 또는 일상에 관련된 소비를 다루었다면, 이어지는 글들에선 소비자들의 감정적 욕망이 좀 더 투영된 소비를 이야기한다. 음악·영화·관광·교통·장난감·도박·마약 등 일상과 큰 관련이 없어도 무방하던 것에서, 없어선 안 되거나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존재가 된 것들이 주제다.
‘무지갯빛 1980년대,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함으로써, 무채색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무지갯빛으로 살았는지 살펴본다.
OTT를 비롯한 온갖 볼거리가 풍족해지고 극장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 ‘그때 그 시절, 극장에서 우리는’에서는 극장과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가 시간을 즐기고 소비했는지를 보여 준다.
‘판매와 소비 욕망의 용광로, 관광의 시간’은 음악과 영화에 이어 대표적 여가 생활인 관광을 살펴본다. 근현대를 거치며 점점 산업화한 관광의 역사를 통해 관광을 소비해 즐거움을 얻으려는 대중은 물론 관광으로 수익을 내려 한 국가의 욕망까지를 아우른다.
‘개발 욕망의 집결지, 기차역을 둘러싼 갈등’은 일제시기 경북 문경의 ‘점촌역’ 개설 사례를 통해, 근대 교통의 중심인 기차역이 사람들의 욕망과 갈등을 어떻게 극대화했는지 보여 준다. ‘노오력에서 재미로’에선 ‘한국 장난감의 생산과 소비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장난감산업이 보여 주는 경제개발의 씁쓸한 이면을 이야기한다.
끝으로 ‘불법과 합법의 경계 속 투기와 도박’과 ‘왜 나는 마약을 소비하면 안 되나’로 이어지는 두 글에선 ‘욕망을 자극하는 중독적 소비’로서 도박과 마약을 다룬다. 현대사 속에서 불법과 합법의 애매한 위치 속에 자리한 도박과 마약을 소비하다 못해 중독되어 범죄자가 되는 사람들과 이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관계를 뜯어봄으로써 현대사의 어두운 자화상을 살핀다.
소비의 한국사.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