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역전의 국회 ‘정상화’를 외쳤던 대통령의 불참은 1987년 민주화로 3권분립 직선제가 이뤄진 후 처음이라 한다. 22대 국회가 시작부터 오만과 불통의 도가니다. 어느 쪽이든 국민의 지지를 담보로 무모하고 우둔한 선택을 내린 듯하다.
의회가 정치폭력의 마당이 된 경우는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다. 다른 역사에도 시공간을 넘나들며 수없이 등장한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 황제의 야심을 지닌 줄리어스 시저가 혈육이자 후계자처럼 양육했던 브루투스를 위시한 공화파 의원들에게 무참히 암살된 사건은 고전적 사례에 속한다.
셰익스피어는 로마 사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브루투스의 배반에 대해 만대에 전하는 명대사를 남긴다. 라틴어로 “Et tu, Brute?(에 투 브루테?)”,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이다. 정작 나를 해치는 자는 건너편 적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잘 아는 심복이나 가까운 사람이라는 메시지다. 심오한 교훈으로 가슴에 새겨 둘만 하다.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영국에서도 유사한 역사가 있었다. 시저의 경우처럼 권력을 향유하려는 의회가 독재 군주를 없애려는 것은 아니었다. 왕의 새로운 통치방식과 종교적 갈등에 절망한 세력이 군주와 의회를 통째로 제거하려는 필생의 몸부림이었다.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는 ‘처녀 여왕’이라는 별명처럼 자식 없이 사망했다. 따라서 왕위계승문제는 붉은 장미 문장의 랭커스터 가문과 흰장미 요크가 사이에 벌어진 중세 영국의 뼈아픈 상처였던 ‘장미전쟁’처럼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 과제였다. 여기서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섬나라 영국의 ‘초’현실적 생존본능이 그 광채를 발휘한다. 식민지와 다름없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 그의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가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됐음을 고려한다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분명하다 -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발 빠르게 영입한 것이다. 스튜어트 왕조의 서막이다.
1603년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왕국의 군주로 즉위한다. 그런데 불과 이년도 채 못돼 국왕 살해 반란이 터진다. ‘화약음모(Gunpowder Plot)사건’이다.
1605년 11월 5일 잉글랜드 의회 개원일에 맞춰 제임스 1세와 왕비, 대신, 의원들을 몰살하려 한 테러리스트 거사였다. 음모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왕궁과 이어진 의사당 지하실에 화약을 설치했다. 가이 포크스(Guy Fawkes) 등 극단적 가톨릭 신자들이 가담했으나 누군가의 밀고로 거사일 새벽에 발각됐다.
음모의 뿌리는 종교적 ‘왕따’였다. 1588년 잉글랜드가 스페인의 아르마다 무적함대를 격퇴한 후 가톨릭에 대한 반감과 박해가 더욱 심해졌다. 신앙을 지키려는 젊은이들은 과격해졌고, 급기야 ‘왕권신수설’에 따라 지상의 하느님으로 비견되는 군주의 암살까지 도모한 것이다.
제임스 1세는 이를 계기로 가톨릭 세력을 탄압하고, 영국국교회(성공회)를 잉글랜드의 국교로 강화한다. 이후 영국에서 가톨릭과 성공회 간의 갈등이 심화 되는 원인이 되었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영국 왕실은 왕의 건재를 과시하려 11월 5일을 불꽃놀이 축제일로 정했다. 세월이 흘러 축제의 성격은 오히려 거사 실패를 아쉬워하는 행사로 변한다. 주동자 가이 포크스의 이름에서 새로운 영어 단어 ‘guy’도 생겨났다. 원래는 부정적 의미로 남성만을 지칭했던 단어가 이제는 성별의 경계를 깨고 여성에게도 두루 쓰인다.
그의 이름보다 유명해진 것은 포크스의 ‘데스마스크’ 가면이다. 19세기 이후 소설에서 영웅 이미지로 포장되고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2006)를 통해 더욱 알려졌다. 이 영화는 2034년 노스 파이어 극우세력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된 영국이 배경이다.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히어로 주인공 ‘브이’가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재의 몰락을 알리는 폭탄의 섬광이 어두운 하늘을 불꽃놀이처럼 밝히는 가운데 장엄히 흘러나오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의 울림이 가슴 시리게 감동적이다.
브이의 가면이 바로 가이 포크스의 얼굴이다. 영화의 표상인 그의 가면은 반독재, 반자본주의 시위 현장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2011년 해커그룹 어나니머스가 월가 점령 시위에 사용한 후부터는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를 굳혔다. 반중 홍콩 시위에서도 출현했다.
제임스 1세와 의회를 파괴하려는 화약음모사건이 여기 대통령의 국회개원 연설 불참과 자꾸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의 유치한 싸움이 ‘회귀’ 보수와 ‘셀프’ 진보 간의 치졸한 이념전쟁일까 아니면 정치 장인들이 그저 이익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기만적 방위 전략일까, 아리송하다. 그들에게도 가이 포크스의 가면이 혹 나타날까? 비록 영화적 상상이지만 덩달아 흥분되는 걸 감추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