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
가장 자주 마음이 쓰이는 것은 아침 8시에 있다. 아이들은 등교하겠다. 5일이나 되는 추석 한가위 긴 휴일 동안, 맘껏 먹고 마시고, 친지들과 한가한 시간을 보낸 후 학교를 가야하는 아침에 아이들은 얼마나 일어나기 힘들까? 그래서 머리는 빗지 않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교복 걸치고 가방 들쳐 메고 오는 길에 잠이 덜 깼을 아이들. 그 아이들 교문 맞이는 누가 해 주고 있을까? 부러 큰 소리로 따뜻하게 ‘어서 와, 좋은 하루 보내.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람 있겠지?
그리고 궁금한 것은 점심시간 운동장 광경이다. 여느 학교의 두 배가 넘는 넓은 운동장에서 새롭게 단장하여 더 부드럽고 안전해 진 인조잔디 위는 얼마나 활기로 넘칠까? 이번 달 9월 말에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축구 시합에 나가는 아이들은 얼마나 기개가 높아 졌을까? 학교에 남학생이 있다면 축구팀은 어느 학교에나 다 있기 때문에, 축구는 가장 인기 종목이고 우승하기에 가장 힘든 종목이다. 학교 대표가 된다는 것은 개인과 가정의 영광이 된다. 아마, 오늘도 3학년 중심, 2학년 에이스 두 명 정도 끼어있는 축구 대표팀은 4교시 수업이 끝나자 마자, 시커멓게 탄 얼굴과 팔 다리 휘저어가며 운동장으로 뛰어 가고 있을 것이다. 배 부르면 뛰기 어려우니까 점심은 마지막에 먹는 것을 최근에 알았었다.
선생님들은 어떨까? 개학 후 첫 수요일 오후, 승진하여 부임하는 교장선생님을 환영하는 친목회는 화기애애하겠지? 2년 전 나를 위해, 완.도.중. 3행시를 지어 주었던 그 날이 새삼 떠오르며, 그립다. 완벽하고 도도한, 중심이 되어 줄 교장선생님이라나.^^ 그러한 위트에 깜짝 놀라웠던 것은 그 친목회 간사가 신규 1년차 체육과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막내가 이끄는 친목회는 늘 미소를 짓게 했었다.
생각해 보면 식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생활에서 서로 한 마음이 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바쁘고 힘들다고 서로 모이지 않으면, 더 멀어지고 더 소원해지면서, 우리의 삶은 지쳐가지 않을까? 작년 스승의 날 모든 학교 교직원이 함께 모여 한 마음 체육대회를 했던 것은 참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5~6명이 한 팀이 되어 7개의 체육활동 지점에서 주어진 활동을 완수하고 마지막에 단체 줄넘기 20번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탁구공을 탁구채로 치며 10미터 달리기, 동전 뒤집기, 링 던지기, 신발 던지기, 간이 볼링, 컵 쌓기, 손대지 않고 고무줄 바지 입기. 각 팀의 한 사람씩 한 임무를 맡아 그 활동을 수행하면 남은 팀원들이 응원을 한다. 모든 임무를 수행하여 가장 빠르게 완성을 외치면 우승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들 하는지, 게임은 무조건 이기고 본다는 생존의 법칙을 습득한 자들의 난투극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맨 마지막 활동에서 손 안대고 고무줄 바지 입기에서 평소에 깔끔을 자랑하던 교무부장이 체육관 바닥에 온 몸을 누이고 비벼대며 입으로 고무줄 바지 입구를 물고, 한 발 한 발 집어넣으려 애쓰는 모습은 야수의 몸부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상품은 티슈박스였었다. 상품은 극비밀이었고, 포장을 금색으로 하여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1,2,3,등 크기가 대, 중, 소였다. 선생님들이 힐끗힐끗 상품에 눈독들이며, 저것을 우리가 타야한다고 승부의식을 불태웠다.^^ 결국 우승의 감격을 맛본 후, 서로 한 박스씩 나눠 가지며 모두 승리와 마음을 나누었던 그 날이 참 그립다.
아~~, 그런데 교감선생님이 새 학교의 일상을 전해 주었다. 본인이 교문맞이를 하고 있고, 학생부장과 학생자치회가 함께하고 있다한다. 새 교장선생님은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라, 취임식에서 학생들과 축구를 함께 하겠다고 하여 학생들의 환호를 받았단다. 첫 번째 수요일 동아리활동 시간에 학생들과 그 넓은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었단다. 난리가 났다한다. 친목회 간사는 또 깜짝 놀랄 이벤트로 모든 교직원이 화합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무던하기 그지없는 나. 아직 나의 마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를 차츰 차츰 밀어내고, 이젠 학교 밖의 세상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려고 한다. 아침 눈을 뜨면, 남편과 손잡고 나가, 아침 운동 겸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일에 집 근처 무등산 자락 골짜기가 내 주는 신선한 공기와 바람을 맘껏 누릴 수 있다니 참 꿈만 같다. 그동안 혼자서 아침 식사를 그럭저럭 하였던 우리 부부가 이젠 성인병 예방을 위해 손이 좀 가지만,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마주보고 있자니, 식당밥과 손쉽고 빠른 음식에 익숙해진 남편이 안쓰러워 보인다.
휴일 후 마지막 날 저녁은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지라, 짐을 싸고 풀고, 늘 마음이 조급하고 바빴는데, 지인들과 한담을 나눌 수 있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일요일 점심에 친한 동생의 생일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이전에는 정중하게 안타까움을 표하며, 초대에 응하지 못함을 전해야 했다. 나는 여유롭게 나주 남평 드들강 가 레스토랑에서 돈까스 월남쌈을 처음 맛보았다. 창가에 앉아 길게 드러누운 강줄기를 담은 늦여름의 초록빛 자연 광경을 맘껏 누렸다. 또 근처 뜰이 아름답고 한옥지붕이 멋스러운 미술관 겸 커피숍에서 빙수를 나눠 먹으며, 나른한 오후 시간을 웃음으로 채웠다. 참 행복했다.
학교 밖에 있는 나, 좀 낯설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그대에게 보내준다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