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학교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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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학교 밖에서
전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9.24(화) 18:00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아~~ 쉽지 않구나. 39년간 습관이 무섭구나. 내 몸은 학교 밖에 있지만 내 귀와 내 마음이 학교 일정을 따라잡아 움직일 때가 있다. 학교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은 그냥 방학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주 긴 유급 방학. 심지어 가끔 학교에 간다, 꿈속에서. 교실 복도 2층, 3층을 오가며, 이것 저것 살피고 선생님들과 머리 맞대고 고민거리를 해결하려 오만가지 생각으로 인상을 쓰고 있다가, 깬다. 그대로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가 허전함에 몸서리를 친다.

가장 자주 마음이 쓰이는 것은 아침 8시에 있다. 아이들은 등교하겠다. 5일이나 되는 추석 한가위 긴 휴일 동안, 맘껏 먹고 마시고, 친지들과 한가한 시간을 보낸 후 학교를 가야하는 아침에 아이들은 얼마나 일어나기 힘들까? 그래서 머리는 빗지 않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교복 걸치고 가방 들쳐 메고 오는 길에 잠이 덜 깼을 아이들. 그 아이들 교문 맞이는 누가 해 주고 있을까? 부러 큰 소리로 따뜻하게 ‘어서 와, 좋은 하루 보내.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람 있겠지?

그리고 궁금한 것은 점심시간 운동장 광경이다. 여느 학교의 두 배가 넘는 넓은 운동장에서 새롭게 단장하여 더 부드럽고 안전해 진 인조잔디 위는 얼마나 활기로 넘칠까? 이번 달 9월 말에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축구 시합에 나가는 아이들은 얼마나 기개가 높아 졌을까? 학교에 남학생이 있다면 축구팀은 어느 학교에나 다 있기 때문에, 축구는 가장 인기 종목이고 우승하기에 가장 힘든 종목이다. 학교 대표가 된다는 것은 개인과 가정의 영광이 된다. 아마, 오늘도 3학년 중심, 2학년 에이스 두 명 정도 끼어있는 축구 대표팀은 4교시 수업이 끝나자 마자, 시커멓게 탄 얼굴과 팔 다리 휘저어가며 운동장으로 뛰어 가고 있을 것이다. 배 부르면 뛰기 어려우니까 점심은 마지막에 먹는 것을 최근에 알았었다.

선생님들은 어떨까? 개학 후 첫 수요일 오후, 승진하여 부임하는 교장선생님을 환영하는 친목회는 화기애애하겠지? 2년 전 나를 위해, 완.도.중. 3행시를 지어 주었던 그 날이 새삼 떠오르며, 그립다. 완벽하고 도도한, 중심이 되어 줄 교장선생님이라나.^^ 그러한 위트에 깜짝 놀라웠던 것은 그 친목회 간사가 신규 1년차 체육과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막내가 이끄는 친목회는 늘 미소를 짓게 했었다.

생각해 보면 식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생활에서 서로 한 마음이 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바쁘고 힘들다고 서로 모이지 않으면, 더 멀어지고 더 소원해지면서, 우리의 삶은 지쳐가지 않을까? 작년 스승의 날 모든 학교 교직원이 함께 모여 한 마음 체육대회를 했던 것은 참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5~6명이 한 팀이 되어 7개의 체육활동 지점에서 주어진 활동을 완수하고 마지막에 단체 줄넘기 20번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탁구공을 탁구채로 치며 10미터 달리기, 동전 뒤집기, 링 던지기, 신발 던지기, 간이 볼링, 컵 쌓기, 손대지 않고 고무줄 바지 입기. 각 팀의 한 사람씩 한 임무를 맡아 그 활동을 수행하면 남은 팀원들이 응원을 한다. 모든 임무를 수행하여 가장 빠르게 완성을 외치면 우승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들 하는지, 게임은 무조건 이기고 본다는 생존의 법칙을 습득한 자들의 난투극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맨 마지막 활동에서 손 안대고 고무줄 바지 입기에서 평소에 깔끔을 자랑하던 교무부장이 체육관 바닥에 온 몸을 누이고 비벼대며 입으로 고무줄 바지 입구를 물고, 한 발 한 발 집어넣으려 애쓰는 모습은 야수의 몸부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상품은 티슈박스였었다. 상품은 극비밀이었고, 포장을 금색으로 하여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1,2,3,등 크기가 대, 중, 소였다. 선생님들이 힐끗힐끗 상품에 눈독들이며, 저것을 우리가 타야한다고 승부의식을 불태웠다.^^ 결국 우승의 감격을 맛본 후, 서로 한 박스씩 나눠 가지며 모두 승리와 마음을 나누었던 그 날이 참 그립다.

아~~, 그런데 교감선생님이 새 학교의 일상을 전해 주었다. 본인이 교문맞이를 하고 있고, 학생부장과 학생자치회가 함께하고 있다한다. 새 교장선생님은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라, 취임식에서 학생들과 축구를 함께 하겠다고 하여 학생들의 환호를 받았단다. 첫 번째 수요일 동아리활동 시간에 학생들과 그 넓은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었단다. 난리가 났다한다. 친목회 간사는 또 깜짝 놀랄 이벤트로 모든 교직원이 화합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무던하기 그지없는 나. 아직 나의 마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를 차츰 차츰 밀어내고, 이젠 학교 밖의 세상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려고 한다. 아침 눈을 뜨면, 남편과 손잡고 나가, 아침 운동 겸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일에 집 근처 무등산 자락 골짜기가 내 주는 신선한 공기와 바람을 맘껏 누릴 수 있다니 참 꿈만 같다. 그동안 혼자서 아침 식사를 그럭저럭 하였던 우리 부부가 이젠 성인병 예방을 위해 손이 좀 가지만,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마주보고 있자니, 식당밥과 손쉽고 빠른 음식에 익숙해진 남편이 안쓰러워 보인다.

휴일 후 마지막 날 저녁은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지라, 짐을 싸고 풀고, 늘 마음이 조급하고 바빴는데, 지인들과 한담을 나눌 수 있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일요일 점심에 친한 동생의 생일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이전에는 정중하게 안타까움을 표하며, 초대에 응하지 못함을 전해야 했다. 나는 여유롭게 나주 남평 드들강 가 레스토랑에서 돈까스 월남쌈을 처음 맛보았다. 창가에 앉아 길게 드러누운 강줄기를 담은 늦여름의 초록빛 자연 광경을 맘껏 누렸다. 또 근처 뜰이 아름답고 한옥지붕이 멋스러운 미술관 겸 커피숍에서 빙수를 나눠 먹으며, 나른한 오후 시간을 웃음으로 채웠다. 참 행복했다.

학교 밖에 있는 나, 좀 낯설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그대에게 보내준다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