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에서 오월정신까지 이어지는 ‘시천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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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동학에서 오월정신까지 이어지는 ‘시천여민’
광주시립미술관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특별전
민주·인권·평화 주제로 예술혼 발휘
민중미술 작가 아시아권 45인 참여
‘동학&오월 아카이브’ 등 4개 섹션
투쟁적 역사부터 동시대 갈등 직시
  • 입력 : 2024. 09.22(일) 17:09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구본주 작 ‘갑오농민전쟁2’.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한국의 조각가 구본주의 작품 ‘갑오농민전쟁2’는 척박하게 영위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직설적으로 빚어낸 걸작이다. 손 보다 큰 발로 땅을 옥죄어 수평의 중심을 잡고 있으며 근육과 뼈가 결마다 살아 있어 따지고 보면 비현실적인 형상이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하늘을 향해 대나무 창을 든 모습은 곧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감상을 이끈다. 이 작품은 지난 2003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의 불꽃 같은 예술혼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에서 출발한 시대사 인식을 품고 있으며 광주시립미술관이 오는 12월 1일까지 선보이는 전시 ‘시천여민(侍天與民)’의 정체성을 압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다. 본관 로비부터 제1·2전시실, 어린이갤러리까지,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노래하는 아시아권 작가 45인의 작품 100여점을 대규모로 선보인다. 구본주의 조각처럼 강렬하게 역사를 직시하는 작품부터 현대사회의 가치를 은유하는 작품까지 다채롭다. 특히 한국 근대사의 분기점을 이룬 동학농민혁명 130주년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 ‘동학에서 오월로’ 나아가고자 한다.

전시 제목인 ‘시천여민’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과 ‘여민주공동체(與民主共同體)’를 축약한 것이다. 전자는 ‘하느님을 모시고 조화 세상을 열어나간다’는 동학의 시천주 주문의 구절이며, 후자는 ‘사람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이뤄나간다’는 뜻으로 오월정신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이처럼 전시는 동학과 오월의 스토리를 개별적이고 분절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정신적 가치가 계승된 맥락으로 인식한다. 나아가 동시대 반복되는 갈등과 혼란 속 전지구적 보편가치로 제시한다.

첫 번째 섹션은 ‘동학 & 오월 아카이브’로, 동학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비롯하여 동학농민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준비했다.

두 번째 섹션의 주제는 ‘시천주조화정’이다.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모든 사람은 제 안에 우주생명을 모시고 있으며, 그 자체가 곧 우주생명임을 뜻한다. 따라서 ‘시천주조화정’은 우주생명 그 자체인 뭇 사람을 서로 존중할 때 조화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섹션에서는 동학의 시천주 정신을 현재의 시대정신으로 재확인하고, 동학농민혁명에 담긴 민중의 염원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화순 작 ‘오월 그날’.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세 번째 섹션 주제는 ‘여민주공동체’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은 하나의 공동체로 결집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신군부 세력에 맞서 비상계엄 해제 및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개인의 희생이 곧 공동체의 삶임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 섹션에서는 80년 광주의 역사적 유훈인 공동체 정신을 재확인하고, 이를 지속가능한 광주정신으로 계승한다.

어린이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마지막 섹션은 ‘뭇살음의 누리’로 동학의 삼경 사상에서 착안한 주제다.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은 우주 안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하늘과 사람, 그리고 만물을 공경하는 마음이라 하였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의 평등을 인지함으로써 만유의 상생과 조화를 지향하는 우주적 삶의 모습이다. 이 섹션에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뭇생명의 공생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며, 자기돌봄에서 타자돌봄으로, 더 나아가 지구돌봄으로 확장되는 동학의 정신적 가치를 현재와 미래 담론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한호 작 ‘영원한 빛-우주동학’.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김준기 광주시립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개벽사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나아가 이러한 정신적 가치가 5·18민주화운동까지 계승된 과정을 살펴본다”며 “피맺힌 항쟁사에 깃든 생명공동체와 평화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고, 역사를 비추어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생각해보는 예술공론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