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아침이슬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서석대>아침이슬
김성수 논설위원
  • 입력 : 2024. 07.25(목) 14:56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70~80년대 저항가로 상징되는 노래 ‘아침이슬’. 극단 ‘학전’ 故 김민기가 서울대 회화과 학생시절 서울 우이동 반 지하에서 그림 그리던 밤, 만든 노래다.

원래 ‘아침이슬’이라는 곡을 구상 당시 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련일지라’라는 가사에서 멈춰 있다가 가사의 ‘그’를 ‘나’로 바꾼 뒤 가사가 잘 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훨씬 더 감정의 이입이 잘 되고, 당시의 시대상을 마주한 ‘나’의 기분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민기는 1970년 ‘아침이슬’을 세상에 선보였다. ‘아침이슬’은 양희은의 노래로 익숙하지만 실제 김민기는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창법으로 불렀다. ‘아침이슬’을 비롯해 발표한 노래들은 민중가요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군사정권에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아침이슬’이 암울한 군부시절 저항의 상징이 될수록 고인의 삶은 고단했다. 아침이슬 등이 수록된 솔로 1집 ‘김민기’가 판매 금지됐다. 전역 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비밀리에 음악 활동을 계속했지만 군사정권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숱하게 체포되고 취조를 받았다.

고인의 모진 삶 속에 ‘아침이슬’은 버팀목이었다. 그는 1987년 6월을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했다. 6월 항쟁 당시 신촌 로터리부터 시청 앞까지 늘어선 100만 명의 군중이 동시에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당시 현장에 고인도 있었다. 고인의 목소리로 아침이슬을 다시 듣게 된 건 1990년 ‘겨레의 노래’를 제작한 뒤 이를 기념해 갖은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다. 무려 20년 만에 ‘아침이슬’을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노래 ‘아침이슬’을 만든 김민기는 병세 악화로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누구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고,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후배들을 길러냈다. 스스로를 뒤에 있는 사람, ‘뒷것’이라고 낮춰 표현했다. 고인이 남긴 노래는 처음엔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군부독재시절 저항가로 외환위기 땐 위로곡이 되었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아침이슬을 빼놓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냥 함께 같이 살아가는 늙은이다.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대중들은 그를 떠나보내지만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