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어느 좋은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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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배움의 庭園·임효경>어느 좋은 수업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6.25(화) 18:08
임효경 완도중 교장.
6월이 끝나갑니다.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신록이 진초록으로 변해 무성한 이파리를 자랑합니다. 교장실 앞 수국은 연보라색에서 진한 핑크색으로 변해 날마다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온 천지가 금계국으로 노랗게 뒤덮이더니. 하늘 온도계가 주홍빛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남아공에서 온 우리 학교 원어민 교사 브론웬이 한국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sticky’한 날씨가 시작했습니다. 후덥지근하고 땀이 배어나와 아침부터 척척하게 옷이 젖습니다. 짜증이 살짝 나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아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완도중은 아침마다 불어주는 서망산 바람과 청해진 포구 바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운동장이 넓어 그 바람들이 섭씨 1도는 열기를 식혀줄 수 있습니다. 며칠 전 하지에는 포근포근 부드럽게 터지는 오묘한 그 맛을 내어주는 삶은 하지 감자를 먹으며, 6월 마른 장마더위를 견딜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더위에 한 풀 꺽여 조용하던 완도중 1학년 3반 3교시, 교실이 시끌벅적하였습니다. 1년차 신임 과학과 교사의 교내 공개수업,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걸맞지 않게 나서는 것 싫어하고, 평소 말이 없고 씨익~ 웃는 모습으로 짧은 답을 대신하는 선생님의 두 번째 공개수업입니다. 첫 번째 수업은 실험실 수업이었는데, 이번엔 1학년 3반 혈기왕성한 아이들과 교실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그 조용한 미소로 천방지축인 남학생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을 예상했습니다. 학습목표도 묵직하게 ‘환경파괴의 원인과 대책을 알고 실행하기’였습니다.

그런데, 45분 수업이 후다닥 지나갔고, 나는 무언가에 홀려, 우리 주변 환경의 파괴가 얼마나 무섭게 진행되고 있고, 인간들의 만행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며, 자기들의 배 속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먹고 먹히는 악순환이 가속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또 우리가 이 지구 자연환경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고민하는 짐짓 진지한 학생이 되어 그 자리에서 배우고 나왔습니다.

참관자들도 배웠는데, 직접 수업에 참여하여, 박진감 넘치는 질문에 테블릿pc로 탐색하여 답을 적어내고, 여러 가지 동영상 자료를 보며 현실의 속살을 파헤쳐가고, 모둠과 토론하며 대책을 세운 활동을 한 학생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앞으로 이 지구를 지켜나가야 할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선생님이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ChatGPT에게 즉석에서 우리의 대책에 대해 묻고 답을 확인해보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 인공지능의 해답 진실유무까지 따져보는 활동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세심함이란.

참관 끝내고 나오는데, 그 반 학생들이 우루루 도서관으로 몰려갑니다. 심지어 과학 선생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우리 도서관에 있는 관련 도서를 소개해 주었답니다. 감동이 몰아쳤습니다.

교장이 부임하면서 계속 독서를 강조하였거든요. 작년 부임할 때 우리 학교 도서관은 아무리 남자학교라 하더라도 너무 어둡고 괴팍하기까지 한 모습이었습니다. 두서없는 책들과 부서진 책걸상이 쌓여있는 창고였거든요. 올해 도서관이 나름 정비 사업을 완성하였고, 소원했던 사서교사도 활기차게 활약하고 계시거든요. 완도군 중심 학교, 1번 학교에 사서가 부재함을 얼마나 통탄하게 여겼는지 모릅니다. 간절하게 원하고 바랐더니, 드디어 올해 사서 자격을 가진 선생님이 기간제강사로 근무하게 되었거든요.

매번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를 가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었지? 하고 질문하곤 했지요. 공개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에게도 학습 관련 도서 안내를 해 주십사 참관록에 부탁하곤 했거든요. 1년차 신임 교사가 교장을 포함한 여러 선배 교사들 앞에서 공개 수업하느라 정신없을 터인데, 바로 그 작은 언급까지 배려하여 수업 과정 안에 넣어 말씀해 주다니요.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대견한지요. 정말 좋.은.수.업.이었습니다. 교실 밖은 후덥지근하였지만, 상큼하고 후련하고 뿌듯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긴장감과 긴박감을 뛰어넘는 화끈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 우리 중1들도 해내는구나, 아무리 어려운 과제라도, 어떻게 안내하고 지도하는지가 중요할 뿐.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날마다 이렇게 큰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해 준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힘을 가지게 될까요? 아니, 너무 큰 바람이지요. 평소 집 밥을 그렇게 성대하게 차릴 수는 없으니, 간혹 한 학기에 한 번씩이라도 성찬에 들어갈 자료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만찬을 베푸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소화해 내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미래를 살아내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참관자까지 감동하고 배우고 나오는 성대한 수업을 모두 준비한다면 우리 미래는 얼마나 든든할까요?

확언컨대, 선생님들의 자존감과 자부심은 수업에서 나옵니다. 수업 잘하는 선생님은 교문 맞이에서도 남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중3 학생자치회 학생들이 그 선생님에게 깍두기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것이 이 교육위기 시기에 선생님을 지켜줄 것입니다. 수업 잘하는 선생님이 제일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