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대장 수색비 청구’ 정부, 법원 화해 권고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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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김홍빈 대장 수색비 청구’ 정부, 법원 화해 권고 거부
2021년 브로드피크 하산 중 조난
외교부, 원정대에 6800만원 청구
1심 이어 2심 “일부 분담” 미수용
‘비용 부담 예외조항’ 법 개정 추진
민형배 “지역의원 합심 성과 낼 것”
  • 입력 : 2024. 06.18(화) 18:18
  • 노병하·정성현 기자
지난 2021년 8월8일 광주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서 장애 산악인 김홍빈 대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자국민에 대해 비정한 ‘원고 대한민국’의 참모습이 다시금 드러났다.

김홍빈 대장 원정대 구조 비용 청구 소송을 벌이던 정부는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 12-1부의 ‘구조 비용의 60%를 정부가 부담하라’는 화해 제안을 거절했다. 히말라야 하산 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 비용 전부를 다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김홍빈 대장은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추대됐고, 문재인 정부가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하기도 한 지역·장애인 산악 영웅이었다. 그의 마지막 등반 역시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시작된 것이었다.

‘열 손가락 없는’ 불굴의 산악인 김 대장은 1989년 에베레스트(8848m) 등반에 성공한 뒤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경량 등반을 하다 손에 동상을 입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김 대장은 포기하지 않고 2006년 가셔브룸Ⅱ봉(8035m)부터 2021년 브로드피크(8047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봉을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등정했다.

김 대장은 지난 2021년 7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74m) 정상에 도전했다. 무사히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 김 대장은 다음 날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후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가 다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와 광주시는 구조대 헬기 등을 동원해 실종 추정 지점 상공에서 수색을 벌였으나 ‘현실적으로 생환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실종 8일 만에 수색을 중단했다. 이후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장례를 거행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1일 만인 2022년 5월 외교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소송을 제기했다. 히말라야 하산 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데 사용된 헬기 비용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청구 금액은 6800만원. 광주시산악연맹과 원정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시산악연맹 포함)에 ‘원고 대한민국’의 소장이 발부됐다. 비정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조차도 “너무하다”며 관련법을 개정하려고 했다.

정부가 김 대장과 관련 소송의 근거가 된 법은 ‘영사조력법’이다. 영사조력법 제19조에 따르면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예외는 있다.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 즉, 해외 위난 상황에 부닥친 경우다.

이에 21대 국회 당시 두 개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민형배 의원(민주당·광주 광산 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의 김경협 의원도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재외국민이 자력으로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로서 ‘귀책 사유가 없으면’ 국가가 영사조력에 대한 경비를 부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지난달 29일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법원은 화해를 지속적으로 권고했다. 1심에서는 광주산악연맹과 원정대원들에게 비용 일부(3600만원)를 나눠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항소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부의 구조 비용의 ‘60%만 청구하라’는 권고 역시 거절했다.

지난달 30일 개원한 22대 국회에서 다시 ‘김홍빈 대장법’이 발의됐다. 이번에도 민 의원이 나섰다.

민 의원은 21대 국회 당시 발의한 법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만들기’ 감사 출신인 정준호 의원(민주당·광주 북 갑)도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민 의원은 “김 대장은 공익을 위해 헌신했고 국가는 훈장을 수여해 공을 인정했다. 그러면 국가가 구상권 등을 행사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22대 국회서 정 의원이 공동발의한 것은 사안의 위중함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역 의원들끼리 힘을 모으겠다. 지난 국회 외통위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던 만큼,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경주 전 대한산악연맹 이사(현 김대중재단 이사)는 “김 대장의 사례는 국민이 해외서 당한 재난이다. 생명이 걸린 사고에 들어간 비용을 개인·집단에 청구한다는 것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또 다른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법률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항소심 세 번째 변론은 내달 9일 열릴 예정이다.
노병하·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