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세이>방언, 그 고정된 생각으로 잃은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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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세이>방언, 그 고정된 생각으로 잃은 시간들
공옥동 광주문협 상임부회장, 사)서은문병란문학연구소 창립회장
  • 입력 : 2024. 05.23(목) 17:33
공옥동 광주문협 상임부회장, 사)서은문병란문학연구소 창립회장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사투리는 못 참지!’라는 흥미로운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오는 10월 13일까지인데 그야말로 심박 하여 방언의 말맛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 놓아 그 의미가 크단다. 이 자리에는 전국 8도 방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영상, 서적, 녹음 기록, 사진 등 관련 자료들이 모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과학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면서 정보통신과 이동 수단들도 어제를 옛날로 부를 수 있을 만큼 문화 간 섞임이 가속화되고 있어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방언 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방언을 모으고 한글로 남겨두는 것 자체가 언어문화를 보전하는 일일 것이다.

방언은 그 지방의 고유한 의사소통이자 언어다. 통상적으로는 한 언어의 변종 정도의 의미를 주며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50여 년 전 처음 빛고을에 발을 디뎠을 때 자못 당황했었다. “오빠야 니가 그랬냐? 언니야 이것 좀 해봐라. 워메 징헌거, 자네가 그랬어?” 등등 깜짝 놀랐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이게 무슨 대화란 말인가. 특히‘자네’는 같은 전라도인 내 고향 전주에서는 2~3년보다 아래 후배에게나 사용되는 호칭으로 듣는 이가 친구나 아랫사람일 때, 그 사람을 높여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이 반말 대화들의 거부반응은 꽤 오래도록 불량품 귀이지개처럼 귀를 괴롭혔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광주사투리에 흠뻑 젖어들어 산다. 잘 닳아 반질반질해진 목기(木器)를 어루만질 때처럼 내 손때가 묻어있는 정다운 말들이 내 언어의 방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이젠 귓속의 공명뿐만이 아니라 시각과 촉각도 약간씩 참여 하는 광주 탯말도 자연스레 구사하며 아껴 쓴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50여 년을 살았으니 정다움으로 받아들여도 손색없을 세월이 아닌가. 주로 정보 전달이 목표인 표준어보다 오랜 세월 그 고장만의 특색을 담아 이해와 배려 속에 자라 온 사투리는 그 지역의 혼이 담겨있으리. 겸손이 부족했던 시절 불만으로 구겨 넣어 버렸던 다정다감한 대화의 보물들을 주머니마다 하나둘 털어내어 본다. 이렇게 발견한 사투리들은 가끔 내 졸시의 시적 효과를 극대화 시켜주기도 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이질감을 가져옴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알아들어야 할 의무감이 없을 때 모든 사투리가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자신에게 익숙지 않은 사투리는 젊은 날의 나처럼 반감의 매개체로 받아들여지기도 할 것 같아서이다. 사투리의 반대말은 표준어이다. 공인이라면 반드시 표준어를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황동규 시인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농사를 짓거나 특정 지역서 조그만 장사를 한다면 표준어를 배우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공인이 되려거든 표준어를 배워야 한다.’라고 강의했다.

그건 표준어란 한 나라가 법으로 정하여 놓은 언어 규범에 맞는 말이며 한국어 규정에도 공적인 상황에서는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뿌리를 두었을 것 같다. 하지만 황동규 시인도 시골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고장의 사투리를 마음 놓고 듣는 일이라고 한 걸보면 그 역시 누구보다도 사투리를 사랑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언어에 우열이 없듯이 방언에도 우열이 없다. 사투리는 독립적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의 자연 언어로서 그 지역의 독특한 생활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정감이 있는 언어이다. 그러니 간혹 정치권에서 사용하여 다툼하는 8도 사투리 재해석에 무슨 우열이 있겠는가. 저마다의 지역구 사정을 대변하고 있는 언어일 뿐이다.

어린 날 뜨거운 국물 마시며 “어험 시원허다!”하는 어른들의 말이 아리송하여 “정말 시원할까?” 궁금하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한마디로 열 마디 상황을 대변해 주는 진덤진덤한 봄나물 무침 같은 빛고을 사투리를 백발소년이 되어서야 무릎 치며 웃음으로 동화되어 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고정된 틀 안에서 선비처럼 물 마시고 이 쑤시며 양반임네 하고 꼰대 곰탱이를 자칭했노라는 나의 고백에 고창이 고향이신 ㅈ선배께서 나도 그랬노라고 너털웃음 웃으며 선술집으로 가는 길을 잡으며 말씀하신다. “어야, 싸목거리지 말고 싸게 싸게 오랑께 얼렁 후딱후딱 안 오믄 니껏은 없다잉” 나는 운동화 끈을 다시 묶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아따 금방 따라간당께요. 그란디 나는 째깐만 먹을라요.” 내친 김에 선배님 모시고 ‘사투리는 못 참지!’특별전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