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에 실린 이창현군의 사진. |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양동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이창현군의 명예졸업식이 오는 17일 오전 10시30분부터 광주양동초등학교에서 열린다. 이군의 가족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하고 양동초 동문인 박준수 시인이 직접 창작한 추모시를 낭송한다.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행방불명된 이군은 1980년 3월 양동국민학교에 입학해 휴교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재학 중이었다. 이군의 아버지인 고(故) 이귀복씨가 유족 증언록(꽃만 봐도 서러운 날들, 2007)에 구술한 내용에 따르면 휴교령이 내려지고 집에만 있던 이군이 거리에서 이어지는 군인들의 행렬이 신기했고, 사람들이 모여 뭐라 외쳐대는 소리가 궁금해져 집 밖을 나섰다는 것이다.
그 뒤로 사라진 이군의 흔적이라도 찾기위해 가족들은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이군의 누나인 이신영씨도 “당시 5학년이었던 나와 함께 종종 등교했다. 길지 않은 학교생활이었지만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며 “5·18 항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창현이의 담임선생님이 (창현이가)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며 찾아오라고 했다. 헐레벌떡 교문 밖으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애절한 심정으로 창현이를 찾아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이군의 이야기를 소재로 공연이 진행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당시 이군의 아버지 이귀복씨가 직접 무대에 올라 “한 번 간 아들은 오지 않고 소리도 없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세월이 흘러 지난 2020년 광주시교육청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희생 학생 중 학업 중단자를 대상으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창현군도 대상에 이름이 올랐지만 양동초에 이군의 생활기록부나 제적부가 없어 진행되지 못했다. 양동초 측은 생활기록부는 졸업생에 한해 남아 있었고, 제적부는 영구보존 대상이 아니었기에 80년을 포함한 일부 연도의 제적부가 사라지고 없으며 이군의 제적부는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때문에 양동초는 그간 5·18과 행불자 단체의 요청에도 명예졸업장 등 이군의 기념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본보가 5·18 기획시리즈인 “이제서야 발견된 5·18 행불 ‘창현이의 제적기록’”(2023년 5월11일자 5면)을 보도하면서 이군의 공식 제적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보는 이군의 아버지가 지난 1988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을 신청했을 당시 양동초로부터 이군의 제적 확인증을 발급받아 제출한 서류로 이군의 제적을 확인했다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의 조사기록을 확인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이군은 1980년 3월5일부터 동년 4월16일까지 등교, 이후로 학교에 출석하지 않아 장기결석으로 제적됐다.
이군의 제적사실을 확인한 양동초는 곧바로 지난 3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개최해 이군을 명예졸업 대상자로 등록, 2024학년도 졸업일을 기준으로 명예졸업 처리하기로 했다.
이군을 대신해 명예졸업장을 전달받는 누나 이신영씨는 “창현이가 이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라며 “모교인 양동초의 배려와 노고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