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과 관련된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광주 동구 소태동에 위치한 태봉마을. 이곳 주민들은 5·18 당시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지역방위군을 편성해 맞서 싸웠다. 사진은 마을전경과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 김양배 기자 |
1980년 5월과 관련된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광주 동구 소태동에 위치한 태봉마을 입구엔 오월마을 안내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조형물에 유리판을 덧대 그 위에 스티커로 글자를 붙였는데, 비나 눈 등에 젖어 글자가 심하게 뒤틀려 있는 모습이다. 강주비 기자 |
그나마 육안으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들은 사정이 나았다. 사방으로 잡초가 무성해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집들도 있었다. 문 앞에 널브러진 잡동사니와 고지서가 수북이 꽂힌 우편함만이 예전에 사람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폐가인 태봉마을의 현재 모습은 1980년 5월 ‘비극’의 연장선상에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100여 가구에 달했던 태봉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84명(인근 주민 포함)으로 꾸려진 지역방위군을 편성해 계엄군에 저항했다. 예비군 소대장이었던 문장우씨를 필두로 김춘국·김복수씨 등이 방위대를 이끌었다. 이들은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이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계엄군을 생포해 ‘태봉마을 철탑 밑에 군 장비가 있다’는 진술을 받아내는 등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5·18 이후 마을에 남은 것은 ‘갈등’ 뿐이었다. 고춧가루 물을 먹이거나 거꾸로 매다는 경찰의 살인적인 고문은 서로가 가담자라며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들었다. 당시 연행돼 고초를 겪은 주민만 40여명으로 추정된다.
1980년 5월과 관련된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광주 동구 소태동에 위치한 태봉마을. 현재는 원주민 모두가 떠나 곳곳에 폐가가 방치돼 있다. 강주비 기자 |
1980년 5월과 관련된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광주 동구 소태동에 위치한 태봉마을. 현재는 원주민 모두가 떠나 곳곳에 폐가가 방치돼 있다. 강주비 기자 |
마을 입구에 설치된 ‘오월마을 안내조형물’만 치열한 항쟁이 펼쳐졌던 태봉마을을 기억하게 해주고 있다. 조형물은 직사각형 모양의 초록색 안내판 2개로 이뤄져 있다. 안내판 한쪽에는 ‘태봉마을’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태봉마을의 5·18 투쟁 이야기가 적혀있다. 이 조형물 역시 과거 마을공동체 활성화사업을 통해 세워졌다.
태봉마을의 하나뿐인 오월 상징물마저 주위의 외면 속에 방치되고 있다. 안내판에 유리를 덧대 그 위에 스티커로 글자를 붙였는데, 비나 눈 등에 젖어 글자가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오물 등이 잔뜩 묻어있는 탓에 한 문단은 제대로 읽을 수 조차 없는 상태다.
이곳을 지나던 한 주민은 “그저 마을 이름표인 줄 알지 안내판의 글자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조형물이 초록색인데 나뭇더미에 가려져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5·18 사적지 13호로 지정된 광주 동구 배고픈다리(홍림교). 태봉마을 주민들은 5·18 당시 지역방위대를 편성해 이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강주비 기자 |
5·18 사적지 13호로 지정된 광주 동구 배고픈다리(홍림교). 태봉마을 주민들은 5·18 당시 지역방위대를 편성해 이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강주비 기자 |
배고픈다리에 설치된 5·18 표지석 옆에는 ‘5·18 당시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 시민군을 편성하고, 이 다리를 중심으로 방어망을 구축해 물 샐 틈 없는 경계를 폈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안내판 속 글자와 사진 등은 세월이 지나 색이 바래져 희미했다. 배고픈다리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사이트로 연결시켜주는 QR코드는 오류였다. 휴대폰 카메라에 QR코드를 인식시켰지만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문구만 떴다.
광주시 관계자는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사적지 소개란으로 연결되는 QR코드인데, 사이트 링크가 수정되면서 오류가 난 것”이라며 “사적지를 방문하는 분들이 QR코드를 문제없이 이용할 수 있게 기존 플라스틱이 아닌 코팅 스티커 형태로라도 QR코드를 임시 설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태봉마을과 배고픈다리는 5·18로 이어져 있다. 시간이 지나며 도로가 확장되면서 현재 다리에 총탄 흔적 등은 남아있지 않다”며 “태봉마을과 관련한 기록이 거의 없다. 원주민들이 대거 떠나는 등 애로사항이 많아 마을공동체도 형성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