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월'… 5월 첫 주말 5·18민주묘지 참배객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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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월'… 5월 첫 주말 5·18민주묘지 참배객 발길
지인·유가족, 고인 떠올리며 눈물
“진실 밝혀졌지만, 왜곡 안타까워”
어린이날 연휴 단체견학·가족 방문
“민주열사들 덕에 자유 누리는 것”
  • 입력 : 2024. 05.06(월) 18:10
  • 나다운·박찬·윤준명 수습기자
지난 4일 오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5·18민주유공자 고(故) 유인호씨의 아내 김정완(88)씨가 남편의 묘석과 영정을 닦고 있다. 나다운 수습기자.
지난 3일 오후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김모(63)씨가 고(故) 류동운씨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박찬 수습기자.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2주 앞둔 지난 3일. 5월 첫 주말을 맞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김모(63)씨는 5·18유공자이자 친한 오빠였던 고(故) 류동운씨를 추모하기 위해 민주묘지를 찾았다. 김씨는 류씨의 묘소에 꽃을 올려 두고 묘비를 어루만지며 44년 전 떠난 류씨의 영혼을 기렸다.

류씨는 목사의 아들로 김씨와는 신광교회를 같이 다니며 인연을 쌓았다.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서울신학대에 입학한 류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로 내려온 뒤 공수부대에 붙잡혀 상무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어렵게 풀려난 뒤 전남도청에서 항쟁을 계속 이어가던 류씨는 결국 공수부대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참배를 마친 김씨는 추모관을 찾아 당시 현장이 담긴 사진들을 어루만지며 과거를 회상했다.

김씨는 “당시 양동에서 직접 김밥을 싸며 항쟁을 도왔다. 날마다 기관총 소리를 들으며 무서웠지만, 투쟁심은 더 강해졌다”며 “도청 분수대 앞 체육관(상무관)에 열사들의 시신이 늘어져 있었다. 그곳에 온 친인척들은 시신을 찾지 못하면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을 품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많은 노력으로 세상에 진실이 알려지고 희생자의 혼을 위로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5·18을 폄하하고 왜곡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가족을 보기 위해 민주묘지를 찾은 유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돗자리와 음식, 술을 싸들고 온 이들은 고(故) 박건수씨의 묘비 앞에 섰다. 박씨의 형 박한선(72)씨는 딸 부부와 아들, 두 손자와 함께 동생의 묘비를 찾았다. 그는 “동생이 5·18 당시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상무대에 끌려갔다. 면회를 가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며 “당시 폭행을 심하게 당해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고(故) 유인호씨의 딸 유선진(55)씨는 “경제학과 교수였던 아버지가 134인 지식인 시국 선언을 한 이후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 인물로 조작됐다”며 “고문도 당하고 옥살이도 했다. 햇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육군교도소서 지내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시간을 확인할 때 햇빛을 보는 등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주간을 맞아 학교 단위의 단체 견학과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온 가족 단위 참배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매년 5·18 주먹밥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함평 대동향교초등학교에서는 지난 3일 4~6학년이 단체 견학으로 민주묘지를 찾았다. 인솔교사 고명서(30)씨는 “현재 우리가 민주사회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면서 “글이나 영상으로만 접하는 것보다 당시 희생된 분들의 묘지를 직접 눈으
로 보면 느끼는 것이 많을 것 같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동향교초 6학년 곽시준(12)군은 “민주열사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처럼 안전한 사회에서 살며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며 5·18민주묘지를 찾은 소감을 밝혔다.

지난 4일 초등학생 자녀와 민주묘지를 찾은 차지영(47)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5·18민주화운동에 관해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교육 차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옛날엔 묘만 있었는데 이렇게 조성이 잘 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차창식(77)씨는 “5·18 당시에는 섬에 살고 있었다. 아이가 아파 광주 병원에 온 날 크게 다친 사람들이 병원에 가득한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익산에서 온 김성배(64)씨 부부는 “해마다 와야겠다고 생각만 하다 실제로 온 건 처음이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비해 묘지가 초라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여기 있는 열사들 덕분에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이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민주묘지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노란 리본, 제주 4·3 동백꽃처럼 5·18에도 누구나 바로 떠올릴 만한 뚜렷한 추모의 상징이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와 함께 찾아온 김현무(46)씨는 “5·18민주묘지에 방문한 건 세 번째다. 아이와 부모님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타지에 사는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며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당일인 지난 5일 자녀의 손을 잡고 민주묘지를 찾은 유영근(48)씨는 “광주에 살아 5·18에 대해서 잘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직접 와보지 못 해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자녀를 데리고 찾아왔다”며 “직접 찾아오니 마음이 경건해지고 그들의 헌신에 감사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아온 서울 전동초등학교 황채원(12)양은 “사회시간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배우고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 광주에 왔다. 오전에는 전일빌딩을 견학했다”며 “5·18민주화운동은 우리의 아픈 역사이면서 기억해야 할 훌륭한 역사”라고 말했다. 황양은 방명록에 “5·18정신을 받들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남기기도 했다.
나다운·박찬·윤준명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