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라마토르스크의 성 삼위일체 성당에서 정교회 신부가 종려주일 미사 중 신자들에게 성수로 축복하고 있다. |
1991년 독립한 후부터 우크라이나에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Ukrainian Orthodox Church-Moscow Patriarchate, UOC-MP),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Ukrainian Autocephalous Orthodox Church, UAOC), 키이우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Ukrainian Orthodox Church-Kyiv Patriarchate, UOC-KP)가 병립했다. 2018년 12월 15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으로부터 교회법적인 승인을 받아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 일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 키이우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통합해 우크라이나 정교회(Orthodox Church of Ukraine, OCU)가 발족했다. 2019년 1월 5일 OCU는 터키 이스탄불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로부터 교회 독립에 관한 토모스(교회령)를 수여받았다.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정교회의 분열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 우크라이나 교회 독립을 인정한다는 발표로 인해 정교회 세계가 콘스탄티노플과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결국 양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러시아 정교회와 UOC-MP는 교회 독립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와의 성찬식(예배에 공동 참여 가능성)을 중단했다.
그동안 콘스탄티노플과 모스크바 사이에는 뿌리 깊은 알력이 있어 왔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이후 모스크바는 ‘정교회 세계의 수호자’, ‘제3의 로마’를 자처했다. ‘제2의 로마’라던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졌으니, 이제 모스크바가 정교회의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돈바스 전쟁에 대한 공식 입장은 중립적이었지만, 많은 지역 정교회 수사들은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새 정부를 지지했다는 점이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키릴 총대주교가 대표하는 러시아 정교회는 2014년과 달리 푸틴 대통령의 특별군사작전을 명백히 지지했다. 따라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적대적인 외국 조직의 분파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푸틴 정권의 가까운 동맹자인 모스크바의 키릴 총대주교는 전쟁 참여에 대한 종교적 정당성을 제시했다. 러시아 정교회가 국가의 전쟁 참여 연계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UOC-MP와 전 세계의 러시아 정교회 신부들은 스파이 활동을 하고 러시아의 정치적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활동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
또한 2023년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한 법령에 따라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일의 날짜가 변경됐다. 이제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는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주현절은 1월 6일에 기념된다. 다른 나라와 달리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크리스마스를 1월 7일에, 주현절을 1월 19일에 기념했다. 크리스마스와 주현절 등 이전과 다른 전통에 따른 축하 행사는 우크라이나의 두 정교회 사이의 분열을 의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교회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988년 키예프공국은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선정했다. 1054년 기독교가 가톨릭과 동방정교로 분화됐다. 키예프공국은 동서 교회 분열 이후 동방정교 세계에 편입됐다. 1686년 모스크바 공국이 키예프를 지배하면서 키예프공국의 주요 지역이 모스크바 대주교의 교구에 편입됐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여전히 모스크바 공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3만8000~4만개의 본당을 가지고 있다. 그중 거의 3분의 1(약 1만2000개)은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속하며, 이는 러시아 정교회와 정식으로 연결돼 있다. 2018년 12월 키이우 공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정교회(OCU)가 창설됐다. 이 당시 OCU는 약 7600개였다. UOC-MP는 남동부 지역(지방 당국 포함)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 남아있다. 키이우 국제 사회학 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1월 기준 신자 수는 UOC-MP 우크라이나 인구의 15% 이상, OCU는 약 44%였다.
UOC-KP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에게 여러 차례 자치권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외세의 선전 도구로서의 교회가 아닌 하나의 통합된 교회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와 소련 시대처럼 종교를 그들의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러시아는 수 세기 동안 종교를 통해 정치적, 종교적인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지배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언제나 민중의 러시아화와 러시아로의 통합을 위해 사용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예배에서 전통적인 언어와 격식, 관습을 유지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OCU는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예배 언어로 채택했으며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를 버렸다.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갈등이 있을 당시,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우크라이나 교회를 독립시키는 것이 종교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로 대두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자치권 인정에 대해 러시아 연방평의회 의장 발렌티나 마트비옌코는 우크라이나의 국내 교회 통합을 범죄라고 묘사하며, 이 일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었다. 푸틴 대통령도 모스크바 대주교 대관식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러시아는 주변국의 종교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대응과 모든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 내 루스키 미르(러시아적 세계) 이상을 전파하는 주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한 우크라이나 교회는 모스크바를 정교회 신앙의 중심지인 제3로마로 만드는 등 러시아의 세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푸틴 대통령의 계획을 저지하고 우크라이나 내 루스키 미르의 영향력 감소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교회의 전례 없는 심한 대립을 가져왔다. UOC-MP와 OCU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면서, 교회 자체가 정치적 투쟁에 휘말리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UOC-MP는 러시아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키려고 노력했고, 그 수장인 키이우의 오누프리 대주교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했다. 2022년 5월 27일에 UOC-MP 협의회는 러시아 정교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OCU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특히 UOC-MP의 일부 성직자가 공개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었기 때문에 상황을 진정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일부 성직자는 퇴각하는 러시아 군대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떠났고 크림반도와 돈바스의 UOC-MP 대표는 모스크바와의 분리에 대한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UOC-MP의 루간스크 교구장은 크렘린의 우크라이나 지역 합병 행사에도 참석했다. 동시에 UOC-MP 자체는 협력하는 신부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며, 이는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러시아의 침공은 UOC-MP의 지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전쟁 전 OCU 비율은 34%에서 전쟁 발발 후 54%로 증가했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바탕을 둔 종교 민족주의는 문제가 됐다. 따라서 정치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능한 선택은 이제 새로운 국가적 합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거나 친크렘린 협력자가 되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귀결됐다.
결국 2023년 10월 19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정부가 제출한 러시아 정교회(ROC)의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 조직적으로 연계된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이 법안은 우크라이나 외부에 센터를 두고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국가의 종교 조직과 관련된 종교단체의 모든 활동을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주요 내용에는 성직자 활동 금지뿐만 아니라 정교회 건물과 수도원의 압류도 포함된다. 앞으로 UOC-MP가 해산될 수 있으며, 그러면 OCU가 모든 본당을 되찾고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한 정교회로 자리매김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UOC-MP 대표들은 이 법안이 우크라이나 헌법을 위반하고 유럽인권협약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문서 중에는 어느 것도 종교의 자유를 금지할 가능성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크라이나 당국은 UOC-MP의 정교회 토지 임대 권리를 박탈하고 종교 장소를 무력으로 점거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에 대한 임대 계약을 종료했다. 젤렌스키 정권은 이미 UOC-MP에서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과 우크라이나의 수백 채의 건물을 빼앗았다.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은 가장 오래된 정교회 수도원 중 하나이다. 이곳은 거의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당국은 UOC-MP와의 싸움을 강화했다. UOC-MP 정교회 대표자들에 대한 박해는 계속됐다. 전국적으로 성직자의 집과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을 포함한 정교회와 수도원에서 수색이 시작됐다. UOC-MP의 정교회, 성직자, 신자들에 대한 민족주의적 공격은 더욱 빈번해졌다. 성직자들은 러시아 세계와의 연결 및 러시아와의 협력 혐의로 기소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2023년 3월 10일 신부들에게 이달 말까지 수도원을 떠나도록 명령했다. 성직자들은 OCU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UOC-MP는 이제 법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모스크바와 완전히 분리됐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법은 UOC-MP를 종식시키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의 활동을 금지하게 된다.
미국 국무부의 2022년 종교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러시아와의 협력 혐의로 UOC-MP에 대해 4만1000건의 조사를 실시했으며 교회 350곳을 수색했다. 또한 국가 안보 및 국방 협의회는 UOC-MP의 주요 후원자들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는 UOC-MP의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에서 성직자들을 퇴거시키고 이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을 강력히 비난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이러한 키이우의 행위를 UOC-MP의 파괴라고 불렀다.
결국 UOC-MP에 대한 우크라이나 당국의 조치가 종교의 자유에 위배되며 러시아 정교회 금지 법안이 국제인권법에 부합하지 않는 문제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 교회 독립으로 가는 정당한 길인지는 교회 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의 상황에서 종교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교회와 정치 권력의 관여는 매우 위험하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