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 전남대·조선대병원 ‘비상경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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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의료대란에 전남대·조선대병원 ‘비상경영체계’
빅5병원 경영난 “몇개월 못버텨”
수술·병상가동률 기존절반 수준
“교수 이탈하면 개점 휴업 돌입”
“의-정 현장복귀 분위기 조성을”
  • 입력 : 2024. 04.01(월) 18:20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병원교수·개원의의 단축진료가 시작된 1일 전남대학교병원 의료진들이 진료실로 걸어가고 있다. 정성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과대학 증원에 타협은 없다’고 밝힌 가운데 이날부터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메우던 의대 교수들이 사직·축소 근무를 시작, 의·정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술·병상 가동률이 기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경영난을 호소하던 대학병원들은 ‘이젠 비상경영체제도 한계’라며 의사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양측이 화해·중재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빅5 상급종합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병원장은 지난달 29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전공의 공백으로 병원 재정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며 “하루 10억~30억원의 적자가 발생해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나는 1~2개월 이후 구조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읍소했다.

현재 빅5 병원은 600억~1000억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을 운용하며 비상경영 중이다. 환자 안전·인력 운용 효율화를 위해 병동 통폐합 등을 추진했지만, 줄어든 수술 수익을 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서울대·서울아산병원 등은 최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직원 무급 휴가(또는 명예퇴직)를 신청받거나 기간을 최장 100일(기존 30일)로 연장했다.

광주·전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 3차병원인 전남대·조선대병원은 전공의가 집단사직한 지난 2월 19일부터 병상 가동률이 점차 떨어져 현재 40~50%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가량 줄어든 수치다. 수술 환자도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외래 환자 수도 10% 감소했다.

두 병원 모두 지난달부터 신규 외래 진료 없이 응급환자 위주로 수술을 진행하거나 병상을 통폐합하는 등 축소 운영을 진행하고 있지만, 하루 수억원대 적자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2018년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200억 한도) 잔고도 거의 바닥난 상태다.
의·정간 갈등으로 전남대병원과 조선대 병원 등이 경영난에 직면한 가운데 1일 조선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대기 의자에 누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양배 기자
현장의 힘든 상황에 어렵사리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의료진들의 불안도 커져만 간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남대병원 간호사는 “병원에 오랜 기간 다니면서 이렇게 대규모 통폐합이 된 적은 처음”이라며 “기존 병동이 없어진 간호사들은 새 병동으로 근무 환경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경영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병동에 근무자 수만 많아졌다. 잉여 인력이 생긴 탓에 간호사들은 평소보다 3~4개의 오프를 더 받고 있다. 결국 강제 무급 휴가를 가고 있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교대 근무로 돌아가는 간호사들은 번갈아 가면서 휴일인 ‘오프’를 갖는데 이때는 월급·성과급 등에 적용되지 않아 그만큼 적은 돈을 받는다. 통상적으로 달마다 10개의 오프를 받는다. 여기에 신규 인력 채용 최소화·발령 유예 등의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현장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각 병원은 당장 구조조정이나 무급 휴가 기간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진 않지만 의-정갈등이 더 깊어진다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비상경영을 진행할 만큼 위급 시기이긴 하나 월급이 밀리거나 명예퇴직을 권고할 정도까진 아니다”면서도 “현장을 지켜온 교수들이 정부에 반발해 일제히 사직서를 모으고 있다. 이 추이가 중요하다. 집단행동 시 경영 상황이 몹시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대병원 관계자는 “아직 교수들이 모두 정상 진료를 하고 있다. 52시간제 축소 근무도 미적용 중”이라며 “곧 의대 비상대책위 교수회의에서 최종 대응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취합된 사직서가 제출될 경우 병원이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할 수 있다. 예의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전남대·조선대 의대 비대위에 따르면, 전남대는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전체 교수 400명 중 220명(55%)이 사직서를 냈다. 조선대는 161명 중 68명(42%)이 제출했다. 각 비대위는 취합한 사직서를 일괄 제출할 경우 위법 소지가 있는 만큼, 1일과 2일 교수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대응 방법과 시기를 조율할 예정이다.

광주전남 의료계는 의-정이 이른 시일 내에 협상을 도출해 의사들이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역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의사들이 자리를 비워 수련병원 환자는 현저히 줄었고 매달 수억원이 손실되고 있다. 그 자리에서 고통받는 건 애꿎은 시민들과 현장 노동자들”이라며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집착말고 근본 논의를 해야 한다. 의료계도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책임 있는 조처를 하길 바란다. 전공의 복귀·의대 교수 사직 철회 등 모두 병원 정상화에 힘써달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절차에 맞춰 진행하는 것을 근거도 없이 중단하거나 멈출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계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재논의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라 환자들의 불편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1일 조선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