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교토삼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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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교토삼굴의 지혜
최동환 취재2부 문화체육부장
  • 입력 : 2024. 03.27(수) 16:52
최동환 부장
중국의 전국시대에 제나라 공자인 맹상군과 그의 식객 풍훤이 있었다. 맹상군이 임금과 사이가 벌어져 힘이 떨어지자 3000명에 이르렀던 식객들이 모두 떠나다시피 했지만 풍훤만이 그의 곁에 남았다. 풍훤은 신세를 한탄하는 맹상군을 찾아가 “교활한 토끼는 굴이 세 개가 있어야 비로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법이다”고 말했다. 풍훤의 계책들을 통해 맹상군은 임금의 총애를 회복하고 제나라 재상에 올랐다.

여기에서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이 고사성어는 미래에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해두면 어려운 일을 면한다는 의미로, 험한 세상에 살아남는 처세술로도 읽힌다.

국내 인기 프로스포츠인 2024 KBO리그가 지난 23일 개막했다. 광주·전남을 연고로 하는 KIA타이거즈는 올시즌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어 지역 야구팬들의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개막 전부터 악재가 발생했다. 팀의 핵심 선수인 외야수 나성범이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나성범은 팀 공격과 수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이범호 감독의 2024시즌 구상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다.

팀 타선의 기둥인 나성범의 이탈로 이범호 KIA 감독의 야구도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감독은 당초 발이 빠른 박찬호, 최원준, 김도영을 1~3번 타순에 앞세우고 중심타선인 나성범, 소크라테스, 최형우를 4~6번으로 두는 라인업을 준비해왔다. 김선빈, 김태군, 이우성이 그 뒤를 받치는 타순이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 외야수로 뛰었던 이우성을 1루로 전환 배치하면서 팀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이 감독은 나성범이 없는 개막 후 2경기에서 초보감독답지 않게 ‘교토삼굴의 지혜’를 발휘하며 모두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23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개막전에서는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른 황대인을 선발 1루수 겸 7번 타순에, 이우성을 우익수 겸 6번 자리에 배치해 나성범의 빈 자리를 메웠다. 또 시범경기 기간 부진했지만 키움 선발 후라도를 상대로 잘 쳤던 최원준을 9번 중견수에 배치했다. 황대인과 이우성, 최원준은 모두 제 역할을 다하며 이 감독에게 감독 데뷔 첫 승을 선물했다.

지난 2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최원준 대신 이창진을, 황대인 대신 서건창을 선발로 투입하는 라인업을 내세웠다. 상대 선발투수에 강했던 두 선수의 데이터를 판단 근거로 삼은 이 감독의 결정이었다. 이 또한 적중하며 2연승을 일궜다.

이 감독이 두 경기에서 보여준 영민한 지혜를 계속 발휘해 승승장구하며 지역민이 갈망하는 우승을 선사해 주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