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공소시효 만료 꼼수 들통 조폭 18년 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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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살인죄 공소시효 만료 꼼수 들통 조폭 18년 중형
1994년 서울 뉴월드호텔 살인범
중국 밀항 시기 조작해 허위자수
검찰, 27년치 계좌·접견기록 분석
공소시효 이전 2003년 밀항 확인
  • 입력 : 2023. 12.17(일) 18:45
  •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
1994년 12월4일 서울 강서구 영산파 조직원 10여명이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던 광주 동구 신양OB파 조직원 4명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이중 2명을 숨지게 한 사건 당시 서울 강남의 뉴월드호텔 모습. 광주지방검찰청 제공
199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강남 뉴월드 호텔 조폭 살인사건’의 범인이 중국으로 도주했다가 28년 만에 붙잡혀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범인은 사건 직후 중국으로 밀항, 도피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귀국하면서 사건 22년이 지난 2016년에 ‘중국으로 밀항했다’며 자수했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2016년 중국으로 도망쳤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노려 이같은 꼼수를 쓴 것. 하지만 살인죄 처벌은 피하고 밀항 혐의로만 가벼운 처벌을 받고 국내에서 생활하려던 그의 계획은 검찰의 끈질긴 수사로 물거품이 됐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상규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모(55)씨에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서씨는 일명 뉴월드호텔 조폭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조폭 간 다툼에서 상대 조직원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해 28년간 도주를 이어 온 미검자다.

뉴월드호텔 조폭 살인사건은 1991년 10월7일 경쟁 상대 조직원에게 자신들의 두목이 살해되자 전 서울 조직폭력배인 강서구 영산파 조직원들이 1994년 두목을 죽인 조직원 출소 소식을 듣고 찾아가 엉뚱한 조폭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영산파 행동대장이던 서씨는 1994년 12월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뉴월드호텔 앞에서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던 광주 조폭 4명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이중 광주 동구 조직폭력배(신양OB파) 조직원 2명을 숨지게 했다.

이 사건으로 범행에 가담한 영산파 조직원 10명이 검거돼 무기징역에서 5~15년에 이르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서씨 등은 수사망을 피해 달아났다.

서씨는 군산에서 한 선박을 타고 중국으로 도망쳤고 해외 등에서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서씨는 지난해 3월 귀국하며 중국 심양 영사관에서 “2016년에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자수해 밀항단속법위반으로 송치됐다.

그러나 검찰 조사결과 서씨는 2016년이 아닌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2003년에 중국으로 밀항한 사실이 밝혀졌다.

1994년 12월4일 결혼식 당시 서씨 등이 범행 후 발견된 흉기(빨간원). 광주지방검찰청 제공.
광주지검은 서씨가 범행 후 공소시효 완성 이전 시기에 중국으로 밀항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서씨와 관련자 15명의 약 27년치 계좌를 추적 및 분석하고, 공범의 14년치 교도소 접견녹취록을 분석하는 등 집중 수사 끝에 서씨의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2003년에 밀항했다면 자동으로 시효는 중단될 뿐더러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짐에 따라 광주지검은 서씨를 지난 6월 28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지난달 10일 열린 서씨의 결심공판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법원은 지난 15일 열린 재판에서 서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두목을 복수하겠다는 보복 범죄에 나서 엉뚱한 사람을 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범행 이후에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상당 기간 외국으로 밀항해 도주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한 점, 당시 범죄 조직상 지위, 다른 공범들의 선고형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검거된 공범은 공개수배 중인 정동섭(55)씨로 지난 8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는 2012년 입국한 뒤 영산파 도움으로 각종 사업을 하다가 서씨가 지난 6월 6일 검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행방을 감췄다.

검찰은 정씨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