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인 기자 |
일제 말기 국어말살정책의 상황에서 우리말로 쓴 시집 청록집을 펴낸 ‘청록파’ 시인 박목월·조지훈·박두진. 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이끈 ‘여배우 트로이카’ 남정임, 문희, 윤정희. 1970년대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모인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오늘날 ‘MZ 아이콘’, ‘초통령’으로 불리는 랩퍼 이영지, 아이돌 그룹 아이브, 뉴진스 등.
지역에서는 1980년대 ‘민중미술’을 주도하며 확장시킨 세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5·18민주화운동의 풍경을 판화로 기록한 홍성담부터 시작해 이들은 ‘광주·전남의 민중미술 화가’로 불리며 한 세대를 완성했다. 이처럼 민중미술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1980년대는 오늘날 광주의 아트씬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대거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휴식의 방법을 탐구하는 김자이, 현대사회에서 버려진 오브제에 착안해 작업하는 유지원, 역사적 장소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세현, 현대사회의 여러 가치이념에 대한 아이러니를 화폭에 옮기는 이인성,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 임용현, 추억 속 행복했던 일상을 실크스크린 판화로 옮긴 정승원, 타자의 꿈과 에너지를 빛과 색으로 빗대 페인트 추상화를 그리는 정정하, 산수화에 맛깔스러운 음식을 적절히 그려 넣어 조화를 이루는 하루.K.
이들 8인의 작가는 올 한해 광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데 이어 최근 인도네시아의 미술 도시라 불리는 족자카르타에 모여 단체전시를 열었다. 이들뿐 아니라 최근 광주에서 청년작가라 자주 불리는 화가들에게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한국 민주화의 기념비적인 해인 1980년대 전후로 광주지역에서 태어나 한국 현대사 및 문화사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인 발전과 변화의 중심이었던 시대에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 이후, 광주에서 매회 비엔날레를 경험하면서 자라왔다. 학업 이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이 2010년부터 공격적으로 시작한 국제 레지던시 사업 등에 처음 참여하기 시작한 세대들이도 하다. 이후 광주의 다양한 문화기관, 갤러리의 교류사업에 참여하면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이들을 달리 표현할 명칭이 없다. 광주의 문화기관, 갤러리들은 이들이 참여하는 단체 기획전시를 명명할 때 30, 40대 전후의 연령대를 고려해 ‘청년작가’라 얼버무린다. 이들 세대를 고려하지도 않고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도 않은 단어다. 빛나는 젊음의 모습으로 그 시대를 채우고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새로운 세대 작가들의 발굴과 더불어 깊이있는 세대연구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