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최종만> 10년 지난 낡은 유통규제,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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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최종만> 10년 지난 낡은 유통규제,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최종만 광주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입력 : 2023. 11.15(수) 14:27
최종만 상근부회장
규제는 국가와 사회경제 질서 및 형평성 유지 등을 위해 꼭 필요하다. 단, 그것이 적절한 수준이었을 때에 한한다. 시행 이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그 실효성과 필요성이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영업시간제한 등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 발전법 개정안은 중소유통 보호를 목적으로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대형마트의 상생을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가시적인 효과는커녕 중규모 식자재마트와 온라인쇼핑이 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시행한 한국유통학회 등 유통·물류 전문가 대상 의견조사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로 인한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에 대해 76.9%는 ‘효과가 없었다’고 답했다. 오히려 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수혜 업태는 ‘온라인쇼핑(58.3%)’, ‘식자재마트 등 중규모 슈퍼마켓(30.6%)’, ‘편의점(4.6%)’ 순이었다. 기존에 대형마트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도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을 이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강제휴무는 이처럼 그렇다 할 효과도 가져오지 못한 채 소비자들의 선택권만 제한한 셈이 됐다.

대형 유통과 중소유통 간의 경쟁이 중심이었던 과거를 고려하면 대형마트 규제의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그 실질적인 효과 유무를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은 유통구조 및 소비 형태 자체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 문제다. 대형마트 규제는 그 의미가 이미 빛이 바랜 시점에서도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떠오르는 다른 유통채널들을 뒤로하고 애꿎은 대형마트 발목만을 붙잡고 있다.

규제라는 벽 앞에 제자리걸음 중인 대형마트와 달리, 온라인 배송은 급격한 발전으로 지금은 ‘새벽배송’이 일상화됐다. 지난 2015년 마켓컬리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현재는 쿠팡,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이 뒤따르며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직접 장을 보지 않아도, 하루 이틀을 기다리지 않아도, 간편하게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이면 받아볼 수 있는 새벽배송에 대해 이용 경험자의 10명 중 9명(91.8%)은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만족스러운 서비스는 모든 지역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켓컬리,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은 서울·경기 등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쿠팡 또한 전라권, 제주, 강원 등에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은 배송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중소도시들은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따라 소비자로서의 선택권을 제한받는 상황에서 새벽배송 서비스에서까지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상품 선택권에 그치지 않고 생활 수준에서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훨씬 다양한 상품들을 실시간으로 선택해 다음날 아침에 받아볼 수 있는 동안, 호남권의 중소도시들은 제한된 선택권 안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기다림 끝에 받아볼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계가 바라는 킬러 규제 혁신 입법과제’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으며 곧 법안 소위를 앞두고 있다. 이 중에는 ‘대형마트 영업 휴무일 온라인 배송 허용’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국망을 갖추고 있는 대형마트에서도 영업 휴무일에 온라인 배송을 가능케 함으로써 새벽배송 미제공 지역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형평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온오프라인 유통채널 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새벽배송 미제공 지역 소비자의 10명 중 9명(88.8%) 이 집 근처 대형마트 점포를 통해 새벽배송이 제공될 경우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유통 전문가들 또한 10명 중 7명(71.3%)은 의무휴업일에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유통 규제의 완화가 소비자 선택권은 물론 유통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대형마트 규제가 존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정책들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며 새로운 발전을 저해시키고 있는 듯하다. 규제란 한번 만들어지면 저절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것이 최선인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