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 기자 |
금목서는 녹음이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이 되어 가지를 떠날 때쯤 꽃을 피우는 덕에 그 존재감이 더욱 빛나기도 한다.
하지만 75년 전 가을에는 달랐다. 이 향긋한 꽃 냄새도 지독한 피비린내를 가릴 수는 없었다.
1948년 10월19일 시작된 여순사건은 당시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가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다.
특히 여수시, 순천시, 구례군, 광양시, 보성군, 고흥군 등에서 반군과 계엄군이 무력 충돌하던 중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됐다. 전남도가 1949년 10월 25일 조사한 결과 1만 113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건이 발발한지 75년이 지난 지금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이 시행 중이며, 국가는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관련자 명예 회복과 피해 보상은 아직 언급하기에도 이른 실정이다. 직계가족인 유족들의 평균 나이조차 80세를 웃도는데도 피해자와 가해자 화해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난 10월19일 고흥군에서 개최된 정부 주최 추념식에는 대통령, 국무총리는 물론 행정안전부 장관, 차관이 모두 불참했다. 지난해 1월 특별법 제정 후 정부가 추념식을 주최하게 되면서 같은해 추념식에는 처음으로 정부를 대표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직접 참석했던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구만섭 행안부 차관보가 정부 대표로 유일하게 참석했다.
1년 만에 추념식에 참석한 정부 대표가 장관에서 차관보로 바뀌자 유족들 역시 서운함을 숨기지 못했다. 불과 1년 만의 홀대다. 추념식에 누가 참석했느냐를 놓고 그 행사의 중요성을 따진다는 것이 과연 과도한 해석일까.
행안부는 “국무총리 영상 추념사, 행안부 장관 추념사를 준비하는 등 정부는 그 의의를 잘 새기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추념사’로 75년 얽힌 한을 풀어낼 수 있는 걸까.
올해도 금목서는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유족들은 75년 전 그날, 손가락 총에 쓰려져가던 아버지, 형제자매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했다. 그 사이 수십번 꽃이 졌지만 여전히 그 날을 위로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