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가을에는 노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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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가을에는 노래하게 하소서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3. 10.23(월) 12:50
정상연 교수
추수가 끝난 들녘 넘어 노을이 지고 도심의 거리는 낙엽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가을이다. 시인은 노래한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젊은 날 연인과의 이별을 노래한 박목월(1915~1978) 시인의 <이별의 노래> 중 일부분이다.

가을은 사랑과 추억을 그리고 낭만을 노래하는 계절이다. 가슴 시린 첫사랑을 소환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누구나 인생을 노래하는 가인이 되기도 한다. 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에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가을 풍경이 더해져 문학적인 감수성이 풍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을은 음악을 통한 영적 소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푸르렀던 나뭇잎을 훌훌 벗어낸 빈 가지를 보며 깊은 사색과 묵도(默禱)가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을을 소재로 한 음악들은 계절과 관련된 다양한 느낌과 주제들로 시간을 형상화하고 듣는 이의 감정을 이입시킨다. 가을이 한창 깊어질 때 필자에게 생각나는 음악을 하나 고르라면, 당연 이브 몽땅(Y. Montand, 1921~1991)의 <고엽>(Autumn Leaves)이다. 떨어지는 낙엽에 지나간 사랑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러나 감정을 잘 절제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별을 표현한 노래인 것 같아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중음악을 즐겨듣는 이들도 있다. 한때는 이를 두고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로 양분해 이러쿵저러쿵 에너지를 소진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음악예술의 본질은 당연 개인적이고 정관적(靜觀的)이며 자율적이다.

지금은 음악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장르들 간의 경계 허물기 현상이 다채롭게 이뤄지고 있고 특히 클래식 음악은 여러 대중음악과 융·복합되어지고 그 쓰임새도 다양화 되고 있다. 영화음악에서부터 텔레비전 광고, 치료음악 등에 국악이나 가요, 크로스오버 음악, 트로트 등과 여러 모양새로 작·편곡 되고 있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쇼팽(F. Chopin, 1810~1849)이 1832년에 조국 폴란드를 떠날 때 첫사랑 글라드코프스카(K. Gladkowska, 1810~1889)에게 이별의 마음을 전하는 <이별의 곡>도, 생상스(C. Saens, 1835~1921)가 작곡한 곡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백조>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이지만 지금은 여러 용도의 배경음악이나 광고 음악 등으로 차용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여러 형태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B.C 347)은 음악을 “음악으로 사유화하고, 감동하고 표현하는 예술인 동시에 지상 예술 중에 미의 극치이다.”라고 했다. 음악은 종합 영양제와 같은 것이다. 세상 살면서 노래 한 소절에 위로받고 위로하기도 하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와 디지털 기기에 이 멋진 가을의 시간을 전당(典當)하거나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들에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럴 땐 아름다운 음악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정화해보면 어떨까? 지상 예술미의 극치를 다 같이 맛봤으면 한다. 여러 형태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한 곡의 음악으로 지친 나를 깨워보자. 오늘 이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깊은 영적 소통을 하는 것이다. 클래식도 좋고 대중음악도 좋고 크로스오버 음악도 국악, 트로트도 다 좋다. 23년 가을은 각자의 취향대로 허락된 오늘의 시간을 사유화하기를 희망해본다. 지금 듣는 이 음악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위안이 될 것으로 믿는다. 저기 회색빛 하늘에서 차가운 바람에 하얀 눈송이들이 실려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