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반대해 촉발됐다. 이후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 지역을 비롯한 전남,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현대사의 비극이다. 특히 지난해 1월20일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이 시행됐으며 이어 10월에는 국가가 처음으로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공식 인정했다. 무려 75년의 세월이 흐른 이후에야 가슴속에 맺혔던 원통함을 풀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유족의 원통함을 풀기에는 아직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이날 정부 주최로 진행되는 추념식에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차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문제의 해결도 시급하다. 현재 여순특별법에는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에 대한 규정만 있다. 대상 또한 ‘희생자’에 한할 뿐이다. 희생자는 모두 고인이 된 상태로 유족으로 인정된 345명 모두가 현재의 여순특별법상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진상규명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17일까지 전남도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희생자 194건, 유족이 6973건이다. 1949년 전남도 조사 결과 희생자가 1만1131명이던 것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국가가 인정한 국가 폭력 사건은 수습도 당연히 국가의 몫이어야 한다. 피해자는 모두 사망했고 70여 년 전 사건을 겪었던 유족들의 연령대도 높다. 그들의 한을 풀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