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데스크칼럼>삐뚤어진 정치전략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데스크칼럼
[전남일보]데스크칼럼>삐뚤어진 정치전략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3. 10.12(목) 16:18
김성수 부장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갈등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지역갈등의 기원은 1971년 치러진 ‘박정희 대 김대중’간 대선으로 평가된다.

박정희 후보측은 선거때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된다’며, ‘이번 선거를 백제·신라의 싸움이라고 해서 전라도 사람들이 똘똘 뭉쳤으니, 우리도 똘똘 뭉치자’는 의미구조를 만들어 영남을 단단히 묶고 전국의 반호남 세력을 결집하고자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조작하고 동원했다. ‘TK정서’라는 말도 이때 등장했다. 이후 유신독재로 보장된 영남패권주의는 대한민국의 사회여론을 호남차별에 근간을 둔 동서지역감정으로 확장해갔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는 시민군을 폭도로 몰며 지역감정을 극단적으로 악화시켜 호남을 고립시켰다. 이를 이용해 집권한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면서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어졌다. 군부세력이 몰락하면서 지역감정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치권은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 출범 이후에도 지역구도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후 영호남 지역갈등은 ‘광주와 5·18왜곡’ 등으로 더욱 진화됐다. 정치선동가들이 역사왜곡과 막말은 더욱 거세졌고, 광주를 찾아 계란 세례 등의 고초를 겪는 ‘정치 쇼’도 난무했다. 대부분 진정성 있는 정치 행보로 보기 어려웠고, 보수 결집을 노린 얄팍한 정치 전략으로 평가됐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 세력 역시 지역갈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세력의 지역감정을 역이용하려는 경우가 늘 존재했다.

호남을 텃밭으로 자부하는 민주당은 정치시즌이면 늘 광주를 찾아 ‘광주정신’ 계승을 부르짖으며 표를 얻어냈다. 하지만 ‘지역 일꾼’이라는 평가는커녕 지역을 대변하는 역할도 못했다는 시각이 크다. 5·18을 겪은 자칭 ‘586 정치세대’ 역시 ‘5·18 광주’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기득권 세력으로 전략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2010년 이후 정치권을 비롯해 지자체별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다양한 노력도 보였다. 2013년 진보·보수의 상징인 광주와 대구가 ‘달빛동맹’을 맺은 뒤 최근 군공항 이전 문제, 달빛 내륙철도 등 다양한 연대활동을 펼치면서 지역갈등 해소에 나서고 있다. 보수진영 정치인들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총출동하는 모습은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있지만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동진정책을, 국민의힘은 서진정책을 각각 내세우며 상대 정당의 지역 기반에 뿌리를 내리려 노력중이다. 두 정당의 정책은 집토끼를 그대로 두고 산토끼를 잡겠다는 게 공통된 전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갈라치기’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일례로 정율성 선생의 기념사업을 놓고 정치권도 아닌 정부기관인 국가보훈부가 ‘이념 갈등’을 부추기고 이다. 정치권에서는 지역갈등을 넘어 광주를 양분하려는 저급한 정치전략으로 평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출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6년 전 결정된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기념사업에 대해 지난 11일 중단권고와 함께 관련 사업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박 장관은 정율성 선생을 ‘공산침략 부역자’로 간주하며 기념사업이 ‘위법행위’라는 입장을 냈다. 광주시는 과거 25년간 지속된 한중 우호교류 사업이라며 위법사항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역대 정부시절 내내 문제 삼지 않았던 정율성 선생의 이념문제가 유독 윤석열 정부에서 거론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크다. 윤 대통령 역시 정율성 선생 기념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광주를 이념대립의 피해자로 만들겠다’는 정치전략으로 비춰지는 모습이다. 지역 정치권은 “지자체 사무에 불과한 사업을 빨갱이 색깔론을 내세워 간섭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도 “철지난 이념 논쟁”이라며, 정율성 갈등 확산을 경계했다.

21세기 한국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국민대통합’과 ‘지역균형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할 한국정치가 후퇴한다면 자멸은 불가피하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갈등이 사라지려면 정치권의 ‘삐뚤어진 정치전략’부터 도려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