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에세이·장소영>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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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에세이·장소영>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장소영 광주문협회원·광주문학 편집위원
  • 입력 : 2023. 10.12(목) 13:11
장소영 위원
운동을 다녀오며 가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본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들이 따사로운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사이사이 초저녁을 지난 시간인데도 어두컴컴 불이 꺼져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도 귀가하지 않은 집들을 보면 이 시대에 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집, 우리 집. 나이가 들어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 집’이 주는 편안함과 그리움으로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우스갯소리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안다. 설레서 떠난 여행길에서든 타향살이가 힘들 때든 집을 떠올리면 마음에 안식이 든다. 원래 집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지 않던가.

‘거리의 아이들’이란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가출을 해 일정한 주거지 없이 방황하다 범죄에 빠지거나 인신매매를 당해 유흥가에 몸을 담기도 하는 등, 상상 이상의 생활이라 충격이 컸다. 마치 풍랑에 휩쓸려 제 위치를 잃어버린 부표들 같았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대부분 따뜻한 가정에 목마른 상태였음이 취재 결과였다.

경쟁적 문화가 너나할 것 없이 외향적 발전에만 신경을 쓰게 한다. 정신적 여유를 가질 틈이 없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구심점이 없는 가정이 붕괴되면 그 다음은 사회의 붕괴일 것이고 더 나아가 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음이다. 이를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회구조와 정치권도 문제지만 제도적 문제만을 탓하기에는 개개인의 노력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홀로 사회 변화를 역행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예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인성, 예절 등에 대한 교육을 해 왔다. 이 양육방법은 동서를 불문하고 다를 게 없다.

식구들이 복닥복닥 모여 앉으면 식탁에 된장찌개와 김치만 있어도 맛난 밥상인데 생선구이나 불고기라도 곁들여지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서로의 온기와 사랑으로 가득한 집안은 행복 그 자체다. 밥을 먹으며 그날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안온한 휴식을 취하는 쉼터가 되어주던 저녁 시간이다.

그런데 함께 밥을 먹는 시간마저 사라져버린 요즘이다. 모두 너나 나나 시간이 모자란 이 시대에는 어쩌면 더 이상 집이 안식처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제 각각 미래를 위해서라며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전쟁을 치르 듯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되어 귀가하면 대화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잠자리에 든다.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면 언제나 반기던 엄마가 계셨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셔서 집안이 휑하면 썰렁한 집 분위기에 짜증이 올라왔다. 똑같은 집인데도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는 집안 공기가 무척이나 낯설고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서늘한 집안 풍경이 일상인 가정이 많아진 것 같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게 있다. 반려동물이나 식물조차 관심을 주지 않으면 바르게 자라지 않는다. 늘 애정과 보살핌을 다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혹자는 귀찮아서, 혹은 더 전문적이라는 이유로 바깥의 교육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학원이나 학교에서의 도덕‘교육’보다는 밥상 앞의 애정어린 한마디가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함양에 도움이 된다.

먼 길을 갈 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가족이다. 물처럼,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도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이 가족이기도 하다. 언제가 되었든 한 끼만이라도 서로 도우며 제대로 된 밥상 앞에 모여 보는 것이 어떨까.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가 되고 격려할 수 있는 따스한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을 말이다.

함께 하는 오늘 하루가 다시 오지 않을 그리움이라는 것을,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나무처럼 비바람에 흔들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알아채지 못 하는 이 소중한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늦은 밤, 불이 켜져 있지 않아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