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 아버지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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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 아버지의 5·18
김강 호남대 영어학과 교수
  • 입력 : 2023. 10.10(화) 13:15
김강 교수
1980년 10월 25일. 아버지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된 날이다. 전남북계엄사 합동수사단에 7월 3일 연행되어 헌병대 구치소에 구금 후 8월 1일 자로 구속됐다. 8월 27일 계엄보통군법회의 공소장에 표시된 ‘죄명’은 소요방조, 계엄법 위반방조 등이었다. 이후 부당한 해직과 판결에 맞선 각고의 항소를 통해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10월 25일은 우리 가족이 결코 지울 수 없는 기념일이 됐다. 하마터면 영영 잃을뻔했던 아버지를 다시 찾은 기적 같은 날이었다.

아버지의 꿈은 외교관이었다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세계를 넘나들고 낯선 문화를 배우며 당신의 능력에 도전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영어에 집중하셨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산수동 밤실마을 산 중턱에는 할머니께서 생계를 위해 벌던 밭이 있었고, 밭일을 하다 한 수레라도 팔 요량으로 시장에 내려갈 때면 아버지를 불러 거둬 놓은 작물을 지키게 하셨단다. 아버지는 그 틈에도 영어책을 가지고 산에 올라 배고프고 지루한 오후 내내 할머니를 기다리며 영어공부에 애써 몰두하셨다.

그렇게 닦은 실력으로 당시 ‘광고’에 진학하셨고, 육사에 가려는 야망은 하나뿐인 아들을 곁에 두려는 할머니의 반대로 포기한 채 전대 영문과에 진학하셨다. 그리고 1964년 미 국무성 장학생으로 하와이주립대 이스트-웨스트 센터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 후 교수로서 국내외 학문적 행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안정되게 살기를 염원한다. 비극적 순간과의 조우는 애초부터 생각지도 않으며 항상 행복한 날이 지속하기를 추구한다. 아버지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영문학자로서 광대한 학문적 세상을 섭렵하기를 염원했고, 가장으로서 가족의 안녕과 자녀의 성장을 위해 살아있는 모든 시간을 아낌없이 희생하셨다. 적어도 아버지 인생에 있어서 5·18 광주사태라는 예기치 않은 역경을 겪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5·18은 아버지의 생애를 절반씩 두 쪽으로 갈라버린 비극적 분기점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가장으로서 정체성과 자존심이 무참히 망가진 인생의 고비였다. 자신이 운명으로부터 소외된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쉽사리 잊을 수가 없었다. 상처와 고통을 달래기 위해 외국 길을 다시 찾아 떠나셨다. 새로운 연구에도 전념하여 영문판 ‘하멜일지’를 국내 최초로 번역하셨다. 덕분에 하멜 전문가로서 강진과 여수, 네덜란드가 다투어 모시는 인기도 누리셨다.

그러나 5·18을 겪은 후 아버지의 삶은 매우 외롭고 힘들었다. 동료들의 냉담과 외면도 견디기 어려웠다. 10년이 지난 1990년, 스탠포드대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에는 ‘임파종’과의 투병에 나서셨다. 정신적 고통의 후유증이 육체마저 침범했으리라. 그러나 새로운 ‘부활’을 계획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으셨다. 병원에 있는 동안 발표한 생애 마지막 논문의 제목은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쓴 ‘나자로스의 미소에 나타난 부활에서 해탈의 미학’이었다. 예수가 되살린 나자로스의 생명처럼 삶의 의지를 상징처럼 보여주셨다.

아버지는 5·18이란 숫자와 우연찮게 마주쳤다. 필자가 펴낸 ‘아버지의 5·18’이라는 서명도 같은 숫자를 지녔고, 1990년대 초 구입해 유품처럼 남기신 검정색 현대 소나타의 차량 번호는 ‘광주 1마 5118’이었다. 돌아가신 후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법’에 따라 2004년 이장한 5·18국립묘지의 묘소도 ‘5구역-18번지’를 부여받았다. 수백여 기의 묘 중에서도 그 번호를 다시 받았으니 신기하리만큼 피할 수 없는 ‘기묘한’ 인연이었다.

‘아버지의 5·18.’ 아버지가 가슴에 십자가처럼 품었던 가족의 곁을 영원히 떠나신 지 8년이 지난 2005년 8월, 당신 삶의 어두운 멍에가 되었던 5·18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려 필자가 엮은 책의 제목이다. 1980년 7월 3일 연행 순간부터 헌병대를 거쳐 국군통합병원에 갇혀있었던 10월 22일까지 은밀하고 꼼꼼하게 작성된 아버지의 쪽지서신을 한데 모은 책이다.

1997년 2월 14일 아버지 타계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이 쪽지들은 어머니와 가족들이 두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다. 마치 권력의 감시를 피하려는 듯 노랗게 색바랜 종이파일 커버 안에는 남들이 읽기 어려운 영문편지가 위장복처럼 첫 페이지를 덮고 있었다.

아버지의 쪽지서신은 당신이 인내한 고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자 살아있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동시에 이 책이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희생당하고 상처받은 모든 죄 없는 영혼과 육신들을 위한 소박한 진혼곡이 되기를 바란다.

2023년 10월 8일. 법원이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마침내 인정했다. 5·18 관련 사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망, 행방불명, 체포, 구금, 고문, 가혹행위 등 국가 공권력을 남용한 불법 행위에 대한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올해로 43년째가 되는 아버지의 석방 기념일 성묘에 가져갈 모처럼의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가슴속에 묵혀왔던 서러움과 그리움을 감사의 눈물과 함께 바치려 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모든 희생자 영령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