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박동>마한의 치소, 익산 건마국 아닌 나주 반남 월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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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박동>마한의 치소, 익산 건마국 아닌 나주 반남 월지국
박동 바른역사 시민연대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 입력 : 2023. 05.31(수) 12:25
박동 자문위원
‘전라도천년사’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그동안 매국사학 태두 이병도의 주장에 근거해 전라도사가 근초고왕의 식민지로 폄훼돼 왔다. 전라도천년사가 아닌 전북도천년사로 둔갑된 천년사의 핵심은 중국 사서인 삼국지에 근거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으로 이주해 와 전북 익산-전주 일대에 마한 치소를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준왕이 한왕(韓王)을 칭했으므로 마한의 치소는 익산 건마국이라고까지 주장을 확장시켰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준왕이 익산으로 이주했다는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준왕은 바다로 들어가 도망쳤다고 했을 뿐 익산으로 갔다는 어떠한 기록도 없다. 오히려 삼국유사에는 준왕이 평양 인근의 한(韓)으로 도망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삼국지에는 진한인들이 진시황의 고역(서기전 210년에 종료)을 피해 마한으로 망명했다고 기록했으므로 마한이 그 이전에 이미 성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는 마한 성립과 관련해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겼다(서기전 194년)’면서 위략의 기록을 인용해 진개의 공격(서기전 296년)으로 마한이 성립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마한의 치소는 어디에 있었을까. 삼국지는 마한 진왕은 월지국에서 통치한다고 하면서 그 아래 안야 축지, 부례구야 진지렴이 신지로 복속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야는 아라가야를 가리키고, 부례구야는 금관가야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들 가야 2국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삼국지는 서기 280년 경 발행됐으므로 그 이전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본 결과 서기 209년과 212년 두 차례에 걸쳐 포상팔국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9년 아라가야를 대상으로, 212년은 금관가야가 그 대상이었다.

이 전쟁을 주도한 나라는 보라국(保羅國)으로 삼국유사 일연선사는 ‘보라는 발라로 지금의 나주다’라고 기록했다. 일본서기 신공왕후 49년조(249년)에도 가라7국 정벌전쟁에 대한 기사가 등장한다. 이는 공간적으로 가야 지역을 가리키고 시간적으로 3세기 초이므로 삼국사기가 기록한 포상팔국전쟁과 동일한 전쟁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 내용을 통해 포상팔국전쟁을 주도한 장수와 전쟁주체 세력이 모두 나주를 가리키므로 삼국지가 기록한 마한 진왕의 치소 월지국은 나주 반남에 위치한 발라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월지국 실존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사전에 입각해 나주, 영암, 해남 일대의 월(月)계 지명을 찾아본 결과 전국 시·군·구 평균 6.6개의 7배에 달하는 월계 지명이 존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천년사’는 일본서기 기년 조작이 가장 심한 신공왕후 49년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근초고왕이 전라도 남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구려 평양성을 침공했으며 고국원왕을 살해하면서 영토를 확장했다고 주장한다.

즉 369년에 근초고왕이 가야 7국을 정벌하고 이어 해남으로 비정되는 남만 침미다례를 도륙했다는 것. 왜와 함께 고사산에 올라 맹세를 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천년사’는 일본서기 뒷부분을 삭제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천추만세에 서번이라 칭하고 야마토왜에 조공을 맹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광주·전남은 한강유역 십제의 식민지이고 십제는 왜의 서번이었으므로 광주·전남은 왜의 이중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이병도는 타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가라7국 정벌전쟁의 기년인 249년에 120년을 더한 후 369년에 신공왕후가 아니라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369년에 근초고왕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삼국사기 근초고왕 24년(369년) 기록에는 고구려왕 사유가 보기 2만으로 쳐들어와 전쟁을 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리하면,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포상팔국전쟁 관련 기록을 도래계 목씨의 사서인 백제기를 인용해 짜깁기해 만든 것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병도는 아무런 검증도 없이 단지 120년을 더해 369년으로 기년을 바꾼 다음 전쟁 주체를 신공왕후에서 근초고왕으로 바꿔 광주·전남의 정복 역사를 식민지사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천년사는 이러한 주장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전북 익산은 나주 반남에 근거를 둔 마한 진왕의 신하들로 사씨(沙氏) 세력들이다. 사씨 세력은 열도에서도 목씨(木氏) 세력, 즉 소아씨(蘇我氏)와 견줄 수 없이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역사를 정반대로 전도시키려면 온갖 비매너와 수치스러움, 야만성을 불러내야 하는 법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야만적인 주장이 통용될 것이라고 보는가. 이제라도 전라도천년사는 즉각 폐기하고 광주·전남의 역사를 새롭게 복원하는 방향으로 호남사를 전면 재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