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20사단 소속이었던 박윤수(오른쪽)씨가 24일 광주 북구 임동의 삼일의원에서 부상당한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다 준 택시기사 신봉섭(가운데)씨, 박씨를 치료한 의사 정영일씨와 43년만에 재회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
24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20사단 박윤수(당시 상병)씨와 인근 병원으로 후송을 시켜준 시민군 신봉섭(당시 택시운전사)씨, 계엄군을 숨겨주고 치료해준 의사 정영일씨와 43년 만의 만남 자리가 열렸다고 밝혔다.
이날 만남은 조사위가 확보한 박씨의 증언을 토대로 교차 검증을 통해 시민군과 의사의 신원까지 추가로 확인하면서 성사됐다.
조사위에 따르면 1980년 5월21일, 20사단 61연대 대대장 당직병이였던 박씨는 대대장 지프 차량을 타고 서울에서 광주로 이동했고, 광주톨게이트를 지나 광주산단 진입 무렵 인근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큰 부상을 당했다.
시민들이 정신을 잃은 박씨를 둘러싸자 택시기사 신씨가 설득하며 치료가 먼저라고 나섰고, 북구 임동의 삼일의원 원장인 정씨가 자택에 박씨를 숨겨주며 치료해줬다. 이후 응급치료와 안정을 취한 박씨에게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며 사복으로 갈아입혔고 그는 무사히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 61연대 본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박씨는 “4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서야 생명의 은인 두 분을 찾아뵙게 돼서 죄송하다. 조사위를 통해 잃어버렸던 기억의 조각들을 비로소 맞추게 됐다”며 “그때의 부상으로 한쪽 청각을 잃어버렸지만, 광주를 원망하기보다는 나를 구해준 광주시민들에게 감사하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이번 만남은 적극적으로 조사위의 진상규명 조사에 협조해주신 세 분 덕분에 가능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계엄군들이 마음을 열고 증언과 제보에 협조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