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1시께 조사천 열사의 부인인 정동순씨가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전해연 인턴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이틀 앞둔 16일 오전 10시50분께 ‘오월어머니집’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묘역에 울려 퍼지는 임을위한행진곡을 들으며 영령들을 기린 이들은 각자 자식과 남편이 잠들어 있는 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사천 열사의 부인인 정동순씨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지 모르겠다”며 묘비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풀을 정리하며 한탄했다. 그는 “아이 아빠가 광주교대 정문에서 대학생들이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시위에 참여했다”며 “그 당시 남편은 그렇게 용감할 수 없었다. 아이 아빠가 공중전화부스를 망가뜨리고 창문을 깨뜨리는 학생들에게 강조한 건 ‘그런 폭력적인 행위는 계엄군이랑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정씨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집단발포한 총에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렇게 죽었다. 천호(조사천 열사의 아들)가 5살이고 막내가 고작 14개월이었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그립고 보고 싶다”고 한참을 읊조리다 묘역을 떠났다.
5·18 첫 번째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 어머니 임근단씨도 아들의 묘를 찾았다. 임씨는 같은 시간 방문한 실로암사람들(장애인복지시설)에 “더운 날 몸이 불편함에도 이곳을 찾아줘 너무도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임씨는 “4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피가 맺힌 눈물이 날 만큼 한스럽다. 엄마 한번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갔을 아들을 떠올라 괴롭다”며 울먹였다.
이후 회원들은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나 찾아올 사람 없는 박대환 열사의 묘까지 들러 그의 넋을 기렸다.
장재철 열사 어머니 김점례씨는 “이번 43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오월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할 것”이라 전했다.
김혜인 기자·박소영 수습기자·전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