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입국한 우크라이나 피란 아동들이 적응해 가고 있는 모습. |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이 대다수 거주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외국국적동포 국내 거소신고자가 2022년 12월 31일 기준 4,538명이다. 연령별로는 0-4세 9명, 5세-9세 76명, 10세-14세 100명, 15-19세 141명으로 총 326명이다. 남아는 총 179명, 여아는 147명이다. 이 중 광주광역시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아동 및 청소년은 20%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은 한국에서 난민 신분이나 민족 동포로서의 위치도 아닌 국제 이주자로만 취급받고 있다. 이러한 애매한 위치의 신분으로 한국 정부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책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법적?제도적?정책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이 한국이라는 이주 공간에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피란민 아동의 삶의 질은 부모의 상황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피란민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 난민 가족의 정착 및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서는 이들의 삶의 안정성은 보장될 수 없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아동들의 주요 일상생활-개인과 가족, 학교, 사회생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다. 전쟁으로 인해 18-60세 남성은 군대에 징집되기에 편모와 같이 입국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와 한국에 친인척이 없는 경우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우크라이나 성인 피란 고려인의 낮은 삶의 질 및 사회적 지위는 이들이 양육하는 아동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들에 대한 절차적 보호와 배려를 위해 임시적이라도 권리 보장 조치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아동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한국사회 적응에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첫째, 우크라이나 피란 아동은 개인생활에서 전쟁으로 인한 외상, 피란, 이별과 상실, 재정착 등의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이오시프(남, 15세, 중3)는 “나는 집에서 우크라이나 전쟁뉴스를 가끔 본다. 이런 뉴스 영상이나 SNS에서 사진들을 보면 매우 마음이 좋지 않다. 한국에 오니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사람들이 죽고 하는 것을 보니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생계 문제는 자녀들의 개인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이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특히 한부모 가정인 경우는 아이들 돌봄과 교육 때문에 당장 취업해서 일하기도 쉽지 않다. 거기에 그들은 심신마자 지쳐 있다.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생계도 걱정이 된다. 다행인 경우는 피란 전에 이미 한국에 들어와서 친인척 네트워크가 있는 경우다. 당분간은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방 하나만 들고 오다보니 새로이 삶을 시작해야 한다. 맨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전적으로 친척들이 책임지고 있기도 한다. 가정 살림도구, 가족이 먹고 사는 것들은 친족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한부모가 살림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 및 돌봄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당장은 가족 모두가 힘든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만 한다.
둘째, 가족생활에서 피란 고려인 아동들은 가족 내 유대감을 보여주는 공동체로서의 역할과 가족 조직의 일원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 통합의 일환으로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피란민들에게 매우 복잡하지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통합 과정에서 개개인의 피란민들에게 가족의 존재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다 주는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가족 신념(가족 의무, 전통 유지, 열심히 일하기, 자녀를 통해 살기)은 난민 가족 구성원에게 전쟁 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가치와 의미가 되기도 한다. 특히 피란 고려인들은 새삼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여 한국에 오니 다른 가족 구성원이 가장 먼저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는 가족이라는 것을 알고 좋은 가족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라(여, 14세, 중2)는 “우리는 집에서 오빠, 남동생과 갈등이 없도록 노력한다. 엄마와도 사이가 좋다. 우리는 힘든 엄마를 위해 집안 청소일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또한 쓰레기도 버리고, 시장갈 때 엄마에게 도움을 준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해도 싸움은 잘하지 않으며 힘든 시기라 조심한다”고 했다.
셋째, 학교생활에서 아동들은 보통 친구사귀기, 학업성취도 높이기, 긍정적인 정서, 상담, 멘토링, 방과 후 수업이 있을 경우 참석하여 한국어, 영어 수업, 또는 동아리 활동을 한다. 학교에서 또래와 연결 및 상호작용, 문화프로그램 등은 피란 아동의 학교생활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피란 아동들에게 따돌림, 소속감 부재, 정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올가(여, 14세, 중2)는 “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스마트폰만 본다. 학교 공부는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주말이면 교회도 안 간다. 어디도 안가고 집에만 있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친구들과 산책도 안 간다. 한국인 친구 집 방문할 친구도 없다. 그렇게 친한 친구도 없다. 집에만 있기에 많이 힘들다”고 한다.
학교생활에서 우크라이나 피란 아동들의 친구는 러시아어를 말하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었다. 이들의 언어구사로 한국어 수준은 심각한 상태에 있다. 자녀와 마찬가지로 엄마도 언어는 어려운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이주배경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과 심리 상담, 이중언어교육 등 여러 적응 시도를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고 한다. 앞으로 이곳 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아동을 포함하여 이주배경 아동을 위한 예비학교 운영과 학교에서는 이중언어강사나 원어민 강사가 바로 수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00(여, 60세, 00중학교 교장)는 “우리 학교도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서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할 듯하다. 지난번 협의 과정에서도 광주지역 4개 학교 교장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이 모여서 가장 강조해서 논의했던 것이 그런 프로그램들이다. 무턱대고 학교에다가 아이들을 던져 놓지 말라고 했다! 예를 들어 탈북 아이들은 사전 프로그램들이 있지 않느냐! 우리말을 다 아는 아이들인데, 단순히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몇 달씩 아이들을 잡고 있는 것이냐! 하지만 외국인 이주배경 학생들은 언어도 안통하고 문화도 전혀 다른 아이들을 무조건 학교에다 던져 놓으니 학교에서 몇 년을 해도 한국어가 늘지도 않는데 국가 측면이나 아이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것은 큰 낭비가 아닌가! 이들이 한국에 와서 이들 미래가 달라질 수 있으니! 진로 교육도 시켜주고 상담도 하고 언어 교육도 하면서 몇 개월 과정을 거친 후에 학교에 넣어주라고 그것을 제일 강조해서 자주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아동들은 동아리, 취미, 레크레이션, 예술 프로그램이 있는데 참가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동아리 프로그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한국어는 언어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아리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동아리에서 한국 친구 맺기를 통해서도 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들 아동들은 아직은 전쟁 트라우마로 언어도 모르는데 동아리 활동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피란 아동이나 이주배경 학생들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적응 과정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 일반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고 유연한 다각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넷째, 사회생활에서 피란 아동을 위한 한국사회 적응 교육은 부재한 상태이고, 이들은 교육에 대한 정보나 접근성 등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정부가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아동을 난민도 아니고 재외동포도 아닌 국제이주자 신분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피란 아동들은 한국 문화 적응, 정체성, 한국 사회의 사회적 지원의 부재와 피란 아동에 대한 무관심등으로 우크라이나로 귀환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교제와 소통, 생활정보 접근을 위해 피란 가족과 아동들은 러시아어 고려인교회에 나기도 하지만 이들 중에는 한국사회와 직접 소통을 원하고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피란 아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복합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가정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피란 아동의 사회적·정서적 지원 제공, 학업 지원 등 피란 아동이 학교와 삶에서 성공하도록 도와야 한다. 피란 아동에게 사회적, 정서적 지원 제공을 위해 사회 복지사, 상담사 및 교사는 특별 상담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 피란 아동에게 학업 지원 제공은 과외 및 방과 후 도움을 위한 훌륭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학교는 정책이나 부모의 권리는 피란 아동의 모국어로 번역되어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피란 아동에게 전쟁으로 인한 피란 경험은 심리사회적 적응에 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 피란 아동은 새로운 급우, 새로운 교사, 새로운 언어와 함께 낯선 환경과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장 시급하고 즉각적인 필요는 개인, 가족, 학교, 사회 간 연결성과 안정성 문제다. 이는 전쟁을 경험한 우크라이나 피란 아동에게 한국사회의 관심에서 비롯될 것이며, 이제 우리는 함께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