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람 기자 |
“내가 죽어야 날 괴롭히는 저 목소리도 그치겠지?” 고통에 울먹이던 그 소녀 옆에 “널 포기하지 않을거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준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추억을 간직한, 건강한 사회인이 됐을까?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광주시교육청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그 소녀가 떠올랐다.
위탁교육기관과의 계약 종료를 앞두고 지역 내 많은 정신건강 위기학생들이 오갈 데 없어지자, 교육청 관계자들의 ‘읍소’가 이어졌다. 당장 수십명의 학생들을 데려다 재우고, 공부시키며 치료해줄 병원을 찾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지역의 대형 병원 위주로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대부분 인건비나 수익성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교육의 공공성’에 공감한 광주성요한병원이 지역 내 정신건강 위기학생들을 품어주겠다는 뜻을 시교육청에 전했다. 광주기독병원도 새로운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이 되어주겠다고 나섰다. 두 병원 모두 중증의 정신건강위기 학생들을 위한 입원형 병상도 마련해 ‘원스톱 교육·치료·입원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덕분에 오는 9월 광주에만 두 곳의 ‘병원형 위(Wee)센터’가 들어선다. 오는 2027년 국립광주청소년치료재활센터까지 문을 열면, 광주의 정신건강위기학생 지원 체계는 전국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가정형편 등 이유로 장기간 입원이 불가피한 학생들을 위한 입원 병상을 마련한 ‘학력인정 대안교육기관’은 전국적으로 거의 없다. 대학병원과 연계해 병원형 위센터를 운영 중인 대구 역시 학력인정형 입원 시스템은 갖추지 못한 상태다.
지금도 수많은 ‘소녀(년)들’이 극심한 우울증이나 중증 ADHD 등에 시달리며 학교생활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있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공허한 구호로 끝날 뻔한 짧은 메시지 덕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