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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화합과 소통으로 진정한 정치를
김해나 정치부 기자
  • 입력 : 2022. 12.19(월) 12:40
  • 김해나 기자
김해나 기자
불요불급(不要不急).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기자가 어릴 적 한문 공부를 할 때 '제일 불요불급한 것은 공부다'는 농담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 들어 흔히 예산을 책정할 때 많이 쓰이는 단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시의회는 지난 14일 본회의를 열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상정한 7조1102억원 규모의 내년도 광주시 일반·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을 의결했다.

시의회는 시가 당초 제출한 29개 실·국 전체 예산안(7조2535억원)에서 2089억8200만원(2.9%)을 삭감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증액분 없이 감액분만 반영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내년 예산안의 대규모 삭감은 집행부와 의회 간의 이견 조율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예산안 의결 후 인사말에서 "2023년 본예산은 의회 예산 심의권 남용이다. 집행부가 의원이 요구한 예산을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 풀이식 삭감을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말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강 시장이 말한 '의원이 요구한 예산'은 자치구 민원성 도로 개설 사업 등 이른바 의원들의 '쪽지 예산'으로 당초 시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가 상임위원회 심사에서 재반영, 이후 시가 부동의한 예산이다.

이에 시의회는 "강 시장의 시의회 비난은 치열했던 예산 심의 과정을 무시한 발언이다. 상임위 심사에서 집행부 실·국장 등이 동의·합의한 증액 예산 사업들도 부동의했다"며 "시민이 부여한 의회 고유 권한인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하는 행위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증액 없는 삭감'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집행부와 의회의 소통 부족의 방증이기도 하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그 어떤 도시보다 민주적 정신을 가지고 시민이 참여하는 시정·의정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강 시장이 본회의 인사말에서 보인 태도는 시민을 대표해 집행부를 견제하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는 권한을 가진 의회를 '수준 낮게' 만드는 것 같아 우려된다.

광주에 대한 '강 시장표' 애정일 수 있지만, 진정한 애정은 시민·의회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지역 시민단체인 참여자치21도 성명서를 통해 "강 시장은 시의원들이 예산을 삭감한 데 대해 눈물까지 흘려가며 시의회를 비난했다"며 "시의회의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하고 시의회를 길들이려는 강 시장을 비판한다"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예산을 삭감했다며 반기를 든 집행부와 불요불급한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인 의회 간 갈등의 간극이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다면 갈등을 줄이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추가경정예산이 남은 만큼 지금 '불요불급'한 건 집행부와 의회의 '기 싸움'이며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것은 양측의 화합과 소통이다.

광주시와 시의회 모두가 '시민을 위한' 행정적·정치적 역할을 해주길 바라본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