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청렴… 법조계 큰 별 잃었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법원검찰
"대쪽·청렴… 법조계 큰 별 잃었다"
●윤관 전 대법원장 영결식||광주지법 판사로 입관… 외길 50년 ||사법개혁안·영장실질심사제도 도입||선관위장때 정치인과 일화 유명
  • 입력 : 2022. 11.16(수) 16:01
  • 양가람 기자
1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윤관 전 대법원장의 영결식이 법원장(法院葬)으로 치러지고 있다. 뉴시스
윤준(61) 광주고법원장의 부친이자 사법개혁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윤관(87) 전 대법원장의 영결식이 16일 법원장(法院葬)으로 치러졌다. 향년 87세.

지역 법조인들은 법조계의 큰 별을 잃었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엄숙한 분위기 속 윤 전 대법원장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법원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사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문을 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거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해남 출신인 윤 전 대법원장은 광주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1962년에 광주지법 판사로 법복을 입었다.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광주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청주·전주지법원장 등을 거쳐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대법관을 역임했다.

대법관 역임 중이던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직을 겸했고, 1993년 9월에 제12대 대법원장에 취임해 1999년 퇴임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내에서 '청렴판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선관위원장 재임 중에 정치인과 단 한 차례의 술자리도 갖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93년 윤관 대법관은 출가한 자녀들의 재산까지 합쳐 5억3000만원의 재산을 신고, 대법관 중 가장 적은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분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당시 고위직 재산공개 과정에서 현직 대법원장이 자진사퇴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투기 등 의혹을 받는 법관만 20명에 달해 법원의 이미지가 추락하던 상황이었다.

1995년에는 인천지법의 집달관 사무원들이 300억에 달하는 경매입찰 보증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국적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윤 전 대법원장은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최초로 대국민사과를 하기도 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국민 기본권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사법개혁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는 평도 받는다. 대법원장 재직 당시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통해 24개 항목의 사법제도개혁방안을 제시했고, 법원조직법 등 5개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판사가 직접 피의자를 심문하고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혐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며 사법적인 과거사 청산에도 기여했다.

이밖에도 △특허·행정법원과 시·군법원 설립 △기술심의관제·사법보좌관제·예비판사제 도입 △법관 근무평정제도·인사제도개편위원회 신설 △법관 윤리강령 제정 △전관예우 방지 조처 시행 등 법관 전문화와 법조인 양성 제도 개혁에도 헌신했다.

법관으로서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대쪽같은 면모를 보이는 한편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판결도 내렸다.

1973년 광주지법 장흥지원장 재직 시절엔 당시 장흥지원 직원에게 시비를 걸고 뺨을 때렸던 통일국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호통치며 직접 사과를 하게 했다. 이듬해 순천지원장 재직 때는 힘없는 어민들이 외지인의 횡포로 생계를 잃을 뻔한 상황에 재판을 통해 어민들이 생업을 이어갈 수 있게 돕기도 했다.

지역 법조인들은 윤 전 대법원장을 '국민의 편에서 사법 개혁에 헌신했던 명판관'으로 기억했다.

광주고법의 모 판사는 "윤 전 대법원장은 20세기 마지막 대법원장으로서 사법이 국민에게 봉사하고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헌신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또 다른 판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1997년 대법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으로 재직했을 때 (윤 전 대법원장이) 사법정보화 정책 등에 관한 재량을 최대한 믿고 부여해줬다. 그 뒷받침으로 사법정보화 초석을 다졌다"고 추모했다.

광주지방변호사회 소속 모 변호사는 "처음 법조인의 꿈을 꿀 무렵, 윤관 대법원장은 재판과 관련한 청탁을 받지 않기 위해 집무실에서 혼자 점심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이 돌아가신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법조인으로서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해 힘써오신 그 분의 정신과 신념을 다시 한 번 새기고 계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