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미얀마 동쪽의 케이인 지역의 한 실향민 캠프에서 한 가족이 밥을 먹고 있다. 사람들의 인권 재단(태국 시민단체) 제공
"타국에서 볼 때 한국은 '민주주의·선진국·난민친화국'으로 비춰져 정착이 쉬워 보여요. 그러나 막상 와서 보면 이곳은 그 어느 나라보다 난민에 인색한 곳입니다."
묘네자 전 미얀마광주연대 대표는 한국의 난민 수용과 관련해 깊은 한숨을 먼저 건넸다. 그는 한국이 난민 협약국임에도 불구하고 '난민에 대해 폐쇄적'이라고 토로했다.
● "'난민 협약국'에도 입국 어려워"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2012년)을 제정했다. 난민 협약 가입은 무려 30년 전인 1992년이다. 많은 이들은 난민법이 통과됨으로써 난민 심사과정의 투명성·난민의 사회권 보장·난민에 대한 처우 등이 개선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20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1994년부터 2020년 4월까지 난민 신청자 수는 총 7만1936명이다. 그러나 이중 인정을 받은 신청자는 1101명(1.5%)에 불과하다. 유엔 난민협약국의 평균 인정률 38%와 비교해 볼 때 현저히 낮은 수치다.
한국에서 난민(G1-5)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입증 서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쟁 등을 피해 피란 온 난민 특성상, 대부분 관련 서류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더 큰 문제는 다행히 입증 서류를 제출했다 하더라도 심사를 받기까지는 최대 수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법무부 공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난민심사 대기 건수는 1만2169건으로, 심사관 1인당 135건을 처리해야 한다. 여기에 난민심사에서 탈락해 신청한 '불복 소송' 건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 탓에 난민법은 '난민 신청 후 6개월 이내에 심사해 결정'을 내리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범래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 대표는 "(한국의) 난민 비자의 경우, 국내에 직접 들어와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우크라이나 등 많은 난민들이 (전쟁·정쟁 등) 여러 이유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 5월 5·18민중항쟁 41주년 기념식에서 정부에 난민 입국 절차 간소화 등을 요청했으나 진전된 건 없었다. '난민 협약국'에 걸맞은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미얀마 동쪽의 케이인 지역의 한 실향민 캠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사람들의 인권 재단(태국 시민단체) 제공
● 입국 후에도 문제 '산적'
"한국에 어렵게 들어온다 해도 문제였죠. 살아왔던 환경 등 모든 게 달라졌는 데 도움 청할 곳조차 마땅히 없었어요…그저 미얀마에 다시 갈 수 없으니 부딪히며 생존했습니다."
지난 19일 광주 북구에서 만난 샤샤(23) 씨는 자신이 느꼈던 '난민 현실'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2019년 한국에 입국한 이후, 지난해부터 난민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샤샤 씨는 '한국에서의 삶'은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만큼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로 출국이 쉽지 않은데도, 두바이를 거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꽤 많은 미얀마인들이 들어왔다"며 "이들 대부분이 갑작스럽게 한국에 온 탓에 소통이 쉽지 않다. 일을 구하거나 병원 가는 일조차 몹시 어려워한다. 이에 돈을 받고 이를 돕는 '에이전트'가 있을 정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출입국 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미얀마 쿠데타 발발 이후, 국내로 들어온 미얀마인 수는 9만40명(8월 기준)이다. 이들 상당수는 인도적 체류 절차(G1-99)를 신청했다. 광주에는 현재 889명이 미얀마 국적 외국인으로 등록돼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지원 센터나 제도 등은 전무하다. 이 탓에 금품을 받고 통역 등을 돕는 속칭 '브로커'가 성행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얀마 난민은 "미얀마 브로커들은 한국어를 조금만 할 줄 알아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수십만 원까지 받아 가며 진행한다. 예를 들면 병원 진료 10만원·여행 결제 및 예약 40만원 등이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럼에도 대부분 (브로커의) 이 행동을 모른척해준다. 불법인 걸 누구나 알지만, 이들이 없으면 한국에 막 들어온 사람들은 도움받을 곳이 없다"며 "(행정당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다못해 잠시 머무를 곳이나 미얀마어를 할 수 있는 통역가 정도만이라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에 대해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미얀마 쿠데타 사태 이후, 주변에서 '셀터(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조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다"며 "과거 한국이 비슷한 도움을 받은 만큼,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필요성을 느낀다. 이미 민간단체에서 소규모로 활동가나 난민들을 데리고 오거나 돌봐주는 사례가 있지만, 체계적인 공간 등을 조성하기 위해 시·정부 차원에서 이와 관련해 충분한 고민을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미얀마 동쪽의 케이인 지역의 한 실향민 캠프. 사람들의 인권 재단(태국 시민단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