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초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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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초월의 시대
  • 입력 : 2022. 09.01(목) 18:06
  • 양가람 기자
오전 7시를 알리는 생체 알람 소리에 A가 몸을 일으키고 영양캡슐을 삼켰다. 왼쪽 손목에 이식한 비접촉식 칩은 밤사이 업데이트가 끝났다. 애완로봇이 따뜻하게 데워진 커피와 충전이 완료된 태블릿을 갖다주면 쇼파에 앉아 주요 뉴스를 읽는다. '인공안구 이식으로 50년 만에 눈 뜬 시각장애인'. 'CEO의 전자지갑에 손댄 노동자 구속'. A는 몸을 일으켜 잘 다려진 정장을 입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맞게 자동 온도 조절 기능이 작동 돼 금방 몸이 따뜻해졌다. 주차장으로 나온 A가 차량에 손목을 갖다 대자 잠금 장치가 해제됐다. "120번째 생일 축하해." 자율주행 도중 친구 B로부터 축하 연락이 왔다. 심장질환이 있던 B는 최근 인공 심장을 이식받았다. 며칠 전엔 "유전자 변형 수술이 젊은 노인들 사이에 유행"이라며 잘아는 병원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B와 수다를 떠는 사이 차가 시청 앞 광장에 멈춰 섰다. 시청 정문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늙은 노동자가 목발을 짚고 서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작업 중 한 쪽 다리를 잃었다는 그는 피켓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이 걸친 슈퍼맨 망토는 우리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술로 인간을 개조해 더 나은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트랜스 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류의 열망을 보여준다.

'트랜스(trans-)'에 담긴 '~을 초월한다'는 의미 때문에 트랜스 휴머니즘은 '초(超)인본주의'로, 트랜스 휴먼은 '초인간'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초인간은 니체의 '위버맨시(Übermensch·초인(超人))'을 떠올리게 한다. '망치를 든 철학자'답게 기존 사상·체제를 무너뜨리려 했던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overman)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고양시키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인간 정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니체의 초인은 트랜스 휴먼과 닮았다.

다만 트랜스 휴먼은 인간의 육체를 보다 강조하고, 육체를 기술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집중한다. 망토를 두른 '슈퍼맨'과 슈트를 입은 '아이언맨'도 향상된 신체 능력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에서 탄생했다. A와 B 역시 강인한 인간, 더 나아가 '불멸(immortal)'에 가닿는 존재를 꿈꾼다.

하지만 자본집약적 기술의 혜택은 오직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존재론적 한계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슈퍼맨 망토나 아이언맨 슈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억압받는 다수를 구원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누구나 '초인간'을 꿈꾸지만, 초인간을 만드는 기술은 소수만이 독점한다.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준 '생체 칩'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이식시켰고, 이는 (정보접근권을 가진) 소수에 의해 대중의 자유·권익이 박탈당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트랜스 휴머니즘이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만약 건강한 사람의 기억력을 극적으로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개발됐다면, 그 약을 알츠하이머 환자만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건강한 사람이 천재적인 기억력을 얻기 위해 약을 복용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제 새로운 의학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가 저서 '사피엔스'를 통해 던진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해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초인을 상징)는 10년 간의 산 속 생활 끝에 깨달음을 얻고 속세로 돌아간다. 니체는 다시 인간이 되길 갈망한 짜라투스트라를 향해 '몰락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인간은 스스로 '몰락을 긍정하고 몰락을 욕망'할 때 비로소 인간의 경계(한계)를 극복한 존재, 즉 위버멘쉬(초인)가 된다는 뜻이다. 니체가 말하는 '몰락'과 '초인'은 주변 환경을 창조적으로 파괴(재창조 가능성)하는 긍정적인 개념이다.

기원전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쓴 수메르의 길가메시를 시작으로 중국의 진시황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꿈꿨고, 현대인들은 질병이나 장애, 노화의 걱정이 없는 '초월자'가 되길 희망한다. 기술 진보의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될 때에 비로소 긍정적 의미의 '트랜스 휴먼·초월자' 개념이 완성된다. 질병, 장애, 노화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것들이 '몰락'되고 누구나 아이언맨 슈트 하나쯤은 착용할 수 있는 사회. 가까운 미래에 건강한 트랜스 휴머니즘이 실현되길 바라 본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