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제식 쌍광스튜디오 대표는 "한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그 안에 담긴 인생까지 담아낼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으로 필름을 사용해 인화된 사진을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동네 사진관은 이전처럼 졸업식, 입학식, 가족 여행 등 수시로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닌, 어쩌다 한 번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 찾아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광주 동구 계림동에서 53년간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정제식(79)씨의 쌍광스튜디오에서는 여전히 '찰칵'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장의 사진에도 그 사람의 삶을 담아내고 싶다는 사진사, 정제식 대표의 63년 사진 인생을 들여다봤다.

정제식 쌍광스튜디오 대표는 사진을 "빛으로 그려내는 그림이자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했다.
● '어깨 너머 직업'으로 시작해 63년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죠. 지금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잘 짜여진 교육과정을 밟을 수 있는 방법들이 많지만, 50~60년 전 대부분의 기술은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이었어요."
63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사진을 찍어온 정제식 쌍광스튜디오 대표는 자신의 사진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주 봉황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던 아버지 밑에서 그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한문뿐이었다. 1958년 중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이제는 네 직업을 찾아 떠나라'며 등을 떠밀었다.
정 대표는 "집안 형님이 계신 광주로 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알려준 곳이 대전의 직업보도원이었다"며 "지금의 직업교육원 같은 곳으로 당시에 라디오 수리부터 이발, 세탁, 미용, 인쇄, 신발 제작, 목공 등 여러 과목이 있었는데 그중에 제가 선택한 것이 사진 기술이었다"고 떠올렸다.
1년간 직업보도원에서 사진학을 전공하고 대전의 한 사진관에서 보조로 10년을 일했다. 친절하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이 하나 없었지만, 선배들의 어깨 너머로 끈질기게 기술을 익혔다.
그는 "그때는 모든 기술 직업들이 다 그랬다.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하기도 어렵고 누가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깨 너머로 보면서 이게 이런거구나, 저건 저런거구나 하며 배워야 했다"면서 "그래도 그 시간을 버텨낸 경험을 토대로 광주에서 지금의 사진관을 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상 사진의 대가로 불리는 정제식 대표가 광주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쌍광스튜디오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은 종합예술…빛으로 그리는 그림"
정 대표의 쌍광스튜디오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광주시민들의 사진을 책임져 온 곳인 만큼 스튜디오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는 대학생부터 한 가족의 단란한 모습, 유명 정치인,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노인의 얼굴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저마다의 액자에 걸려있다.
수많은 인물의 사진을 찍어온 정 대표의 전문분야는 인상사진이다. 인상사진이란 인물사진 중에서도 얼굴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으로, 단순 초상적인 사진뿐만 아니라 인물의 성격이나 인성까지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정 대표는 정통 인상 사진을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어떤 한 사람의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그이가 30년, 40년, 50년간 살아온 흔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사진사의 몫이다"며 "일반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시는 손님들은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모습 중 어떤 모습이 아름답고 어떤 표정이 본인을 잘 드러내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분들에게 알맞은 모습과 표정을 찾아내는 것이 제 일이고 그 사람의 얼굴형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빛이다"고 설명했다.
빛과 그 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로 둥근 얼굴형을 각지게 보이게 할 수 있고, 각진 얼굴도 갸름한 계란형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조명(빛)을 활용하는 아날로그 사진만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정 대표는 "그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서사적인 감각도 필요하고 구도를 잡기 위해서는 미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또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서 피사체의 감정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리듬도 필요하다"며 "이 모든 것들이 묶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진을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제식 쌍광스튜디오 대표가 50여년간 사용해온 아날로그 사진기에 남아있는 세월의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 아들, 며느리까지… 가업 이어가
79세의 나이로 팔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정 대표는 여전히 쌍광스튜디오를 찾는 손님들의 사진을 직접 찍는다.
정 대표는 "아침에 출근을 하면 오늘은 어떤 얼굴형을 가진 사람이 내 앞에 사진을 찍어달라고 올 것인가부터 생각한다"며 "저는 제가 매일 논문을 쓴다고 표현한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담아낸 최고의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서 피사체에 대한 연구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0세를 넘겨서야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고 광주대학교에서 사진학과 석사 학위를 따냈다. 60세가 돼서는 강단에 서서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왔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자부심은 뛰어난 기술도, 명성도 아닌 자식 3명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아들만 셋인데, 큰 아들이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왔고 같이 학교를 다니던 며느리까지 미국에서 사진 공부를 같이 시켰다. 막내아들까지 사진을 전공하고 지금은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집에만 사진을 하는 사람이 저를 포함해 4명"이라며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젊은 시절, 비록 자신은 기술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멸시도 받았지만, 자식들만큼은 사진과 같은 수공업 기술과 직업이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그는 "대한민국도 전문 분야에서 수십년간 열심히 한 사람은 인정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됐다"며 "세월이 흘러 이제는 휴대폰으로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여권사진까지 만들어버릴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우리 광주에서 여전히 사진다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를 찾아주신다"고 자부했다.
정 대표는 동구명장명인장인협회의 회원으로 사진뿐만이 아니라 모든 수공업적인 일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점차 인정받는 문화가 마련되고 있는 것에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에 동구명장명인장인협회가 출발을 할 때 22명의 회원들의 사진을 제가 모두 찍어드렸다"면서 "제가 직업적으로 오랜시간 사진을 찍어왔지만,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직접 사진을 찍어드리면서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기간 다지고, 지켜온 가치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