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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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 입력 : 2022. 03.30(수) 13:21
  • 편집에디터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시대가 많이 요란스러워졌다. 아니 사람들이 요란스러워진 것일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만 하루에 300명 이상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 치고 하루 종일 수십 개의 화면마다 시시각각 번쩍이는 티브이는 죽음과 현실이 바로 붙어있는 실제상황을 그림처럼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렇다면 마음을 어디에다 붙이며 살까?

나는 지금은 중앙대학교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린 서라벌 예술대학 맞은편 동소문동에서 태어나 50년을 넘게 살았다. 서울 북악산과 혜화문(동소문)밖 성벽 아래 삼천 평이 넓게 퍼진 삼선교부터 전차 종점이 있던 미아리 고개 밑 돈암동이 어린 시절 내가 누비고 다녔던 동네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북악산 줄기 밑의 돈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종로 5가 앞 이화동에 있던 정신여중을 다녔다. 토요일에는 복개되지 않아 성북동 물줄기가 흘러가는 과거 서울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던 지금의 대학로를 걸어서 혜화동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었다. 초등학교 때는 남산에 있던 KBS에 어린이 공개방송을 구경 가기도 하고 중학교 때는 MBC 라디오 공개방송을 친구들과 몰려다녔다. 나름 서울의 중심 문화를 즐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고등학교를 미아리고개 너머 길음동 지나 수유리 지나 논밭이 보이는 쌍문동까지 가게 되었다. 이곳은 최근에는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이보다 훨씬 앞선다. 자동차도 별로 없던 시절인데 버스만으로 30분 정도를 타고 갈 정도로 멀었다. 학교도 찻길 바로 옆에 있던 중학교와 달리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만 했다. 당연히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 갈등이 심했었다. 그런데 교정에서 아주 초라한 양복을 입은 노인이 꽃밭을 손질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구두도 아주 많이 꿰매고 손질해서 오래되고 투박해 보였다. 그분은 먼지 일으키며 뛰어다니다 간혹 낯설다는 듯 쳐다보는 우리들을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온화한 맑은 눈으로 바라만 보셨다. 그분이 우리 학교 이사장님이라는 사실을 졸업하고 알게 되었다. 왜 장황하게 긴 얘길 할까?

어떤 계기가 있어 내가 살아왔던 동네에 대해 정리하게 되었다. 누군가 정릉 얘기를 하면서 녹이 쓴 철문 집에 사셨던 분에 대해 썼다. 그분은 지방 명문 고등학교의 이사장님이고 사업체의 사장님이셨지만 가난하고 소박하게 사셨다고. 의로운 일을 하는 많은 분들을 소리 없이 도와주고 학교의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데는 물질을 아낌없이 부으셨지만 자신은 숙직실 같은 공간에서 지내시면서 극단적으로 엄격하셨다는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내가 다녔던 학교의 이사장님이 떠올랐다. 또한 고등학교 때 내가 자주 버스를 갈아 탔던 종암동에 잠시 사셨던 이육사의 글을 읽을 때 이육사 형제들이 어머니 환갑을 기념하며 가난하게 살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 따님의 이름이 '옥비'(비옥하지 말 것)라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에 기름이 끼면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 기름(비옥하다)이 낀다는 것은 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신도 가치관도 사람에 대한 태도까지 모두 포함할 것이다.

성북동에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도 내가 걸어다니던 동소문 성벽 아래에 있다. 그의 춘화는 일반인들의 '춘화(春畫)'와는 다르다.

"따슨 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 하리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쌉쌀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춘화〉, 전문)

삼라만상 일체가 마음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유마경을 읽고 있던 스님에게 꽃잎이 떨어진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잘 아는 스님이지만 "구태여 꽃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라면서 유마경을 덮고 향을 피우고 봄을 즐긴다. 한용운은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외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춘화라고 제목을 붙였다.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가끔 라디오에서 봄이 되면 이 시를 춘주(春晝)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것을 듣는다. 우리나라 말에 '춘주'라는 말은 없다. 굳이 한자를 해석하면 봄낮이겠지만 그런 단어는 없다. 만해 같은 훌륭한 분이 춘화를 얘기할 리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주(晝)에 획이 하나 잘못 인쇄돼서 화(畵)가 된 것이라고 본다. 봄을 즐기면서 갈등하는 만해의 경지를 그대로 보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 모든 것을 너무나 밖으로 의미화하고 목소리 높이는 사회가 본질적 아름다움이나 슬픔을 그냥 바라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