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언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교육학박사 |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1997년 당시 김대중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던 선거 연령 하향이 이뤄져 2005년 만 19세, 2019년 만 18세 선거권이 현실화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만 18세 청소년들은 과거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선거 연령을 낮추는 것에 대해 청소년들의 판단력 부족을 이유로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고교생들을 상대로 한 정치의식 조사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20년 광주광역시교육청‧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의회가 주관한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거장'팀이 광주지역 고등학생 245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정치의식 현황을 설문 조사하였다. 학생들은 선거 연령 하향에 '찬성' 44.5%, '반대' 31.4%였다.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의 주인이자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기본권 때문' (19.2%)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선거연령 하향으로 인해 투표 참여에 대한 책임감, 정치 의식 등에서 자신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엔 '선거 기간이 되면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을 찾아볼 것이다'는 답이 34.3%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35.9%)는 응답이 '보장받는다'(16.3%)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학생들은 투표를 하는 등 참정권 행사와 관련한 교육에 대해 '잘 이루어지고 있다' 21.2%,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35.1%로 응답하였다. 정치 참여 기회 및 선거 교육 부족에도 '나에게 선거권이 주어진다면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학생'은 81.3%로 선거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민주시민교육이 일상화된 독일은 지식교육뿐만 아니라 정치교육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 기저에는 '반권위주의 교육'과 '비판교육', '저항권 교육'이 있다. 권위 앞에 쉽게 순종하지 않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능력, 학생들의 비판 의식을 고취시켜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합의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정치교육은 어떠한가.
현재 시도교육청과 선거관리위원회가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교육 현장에서 정치교육을 더욱 활성화하고 내실화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해왔던 이론과 지식 중심의 교육은 학생들의 정치적 민감성을 높이기에 적절하지 않다. 교원의 정치 기본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정치교육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학교를 떠난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정치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해 볼 문제이다.
이제 정치 이야기는 성인들의 술자리 안주거리가 아니라 학생들의 일상적인 대화 주제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학교가 정치장화 된다며 우려를 하는 사람들의 진짜 속내가 표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아닌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선거권을 갖게 되는 고등학생 중심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정치교육을 시작하여 그 안목을 넓혀야 한다. 학급, 학교, 마을 안에서 자신이 불편해하고 주장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 규정상 교사가 학생들에게 정치, 선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교육현장을 대처할 만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선거관리위원회와 민주시민교육 관련 공공기관‧단체가 학교로 찾아가는 교육과 비대면 온라인 정치교육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정치교육을 위한 교안과 교재 등의 콘텐츠는 교육청과 함께 개발하고,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시민과 함께 바람직한 정치교육의 확산에 앞장서야 한다.
3월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 만 18~19세 유권자는 98만여 명이고, 광주지역은 3만2000여 명에 달한다. 후보자간 지지율이 박빙일수록 이들의 선택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을 비롯한 우리 지역의 대표를 선출할 때에도 청소년들의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 이제는 선거 연령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청소년 정치교육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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