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
전남도 결혼이민자 등록 외국인 분포는 인구대비 4.1%에 해당된다. 경기도의 30.1%보다는 적지만 다문화 혼인비율이 제주도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11.8%다. 이같은 추세는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출생과 청년층 인구유입이 65세 이상 노인인구를 추월하지 못할 경우 다문화 가구원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여름 완도군 한 해변을 갔다가 그곳에 온 피서객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나 많은,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구나" 라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류학 용어에 '동화모델'이라는 게 있다. 이주민이 주류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규범, 언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주류사회와 똑같아져야 한다는 모형을 말한다. 이주자 집단과 소수자 집단의 경우는 문화 탈락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주류 또는 이주를 받아 들이는 호스트 사회의 경우 일반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지 않는다. 동시에 음식, 복장, 음악, 춤 등 외국의 문화 요소가 들어오면서 변화를 겪게 되는 '문화접변 현상'이 동반된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다양한 이주민의 문화가 미국문화에 녹아 들어 새롭고 매력적인 문화를 창출해 낸다'는 문화적 용광로 모델이 작동한다. 그러나 이민 2세대가 지나면 고유문화는 사라지고 이주민 고유의 관행이나 관습이 미국화가 된다. 때로는 스테레오 타입의 문화가 민족 요리나 축일 등의 형태로 남기도 한다. 결국 이주민의 문화는 버림과 보존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경우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다문화'라 부르며 문화적 용광로 즉 동화모델을 다문화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다. 지역민들도 이주민들을 '다문화'라 부르고 있다. 이 표현이 내포한 의미는 다양하다. '내국인이 아니다'는 의미와 함께 뭔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그 다름이 긍정적인 느낌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사실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말에는 통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든 민족은 동등하다는 원칙이 깔려 있으며 다른 인종과 민족에 대해 포용적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상호존중과 상호배려의 원칙이 기본임은 물론이다. 동화모델이 문화적 용광로로 표현 된다면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모자이크, 샐러드 볼(Salad Bowl)로 이야기 된다. 소수인종 및 민족집단의 문화보호와 평등한 기회의 확장이라는 원칙이 내포돼 있다. 샐러드 볼에 담긴 과일과 채소가 어우러져 그 고유한 맛을 내듯이 다양한 문화의 독립성과 공존을 중시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기존 문화에 통합 및 흡수시키려는 용광로 이론과는 다른 의미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여성들이 한국어 익히기를 비롯해 △자녀교육의 어려움 △사회경제적 참여의 장벽 △내국인 여성보다 더 강하게 요구되는 가부장제적 질서 △인권 문제를 얘기할 만한 사안 등 우리 사회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 많다. 현재 문화정책이 갖는 시혜적 성격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역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을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가진 주체로 바라보며 인종이나 민족이 차별의 주제가 아닌 다문화주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민 역시 세계 각국에 널리 퍼져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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