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참사' 추모공간 마련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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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학동참사' 추모공간 마련 서둘러야
  • 입력 : 2021. 08.24(화) 13:18
  • 홍성장 기자

어느덧 77일이 지났다. 참 빠르다. 지난 6월 9일 있었던 '학동 참사' 이야기다. 철거공사 중 5층 건물이 무너져 지나던 버스 승객 9명이 숨진 안타까운,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은 여전하지만, 우리의 기억에선 조금씩 지워져 간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했던 광주 동구청 내 합동분향소도 이젠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런데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분향소가 마련된 곳에 있는 커다란 현수막이다. '학동 재개발 붕괴참사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동구청 앞 거리에도 같은 현수막이 그 자리 그대로다. 동구 지역 각 동마다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같은 현수막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뒷이야기가 가슴 아프다. 학동 참사로 사랑스러운 이들을 잃은 한 유가족의 뜻이 담겼다. 애초 거리의 현수막 등도 분향소와 함께 철거할 예정이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에 현수막을 그대로 뒀다. '잊히는 게 두려운' 유가족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부탁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한 유가족은 사고 현장을 지금도 영상에 담고 있다. 그 역시 '빠르게 잊혀질 참사에 대한 기억이 두려워'서다.

가슴 아프지만,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우리네 슬픈 현실이다. 대형 참사가 터지면 항상 안전 미비가 드러나고 정치인이 찾아가 위로한 뒤 긴급대책이 발표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는, 악순환을 우린 수없이 봐 왔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세월호가 그랬다. 학동 참사도 그렇게 기억에 묻힐지도 모를 일이다. 유가족들이 '잊혀지는 게 두려운' 이유다. 그들에게는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관심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인 셈이다.

이웃 나라 일본이 던지는 '교훈', 우리의 현실이 더 슬프다. 그들이 재난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재해와 재난은 우리가 잊어버리면 그때 온다.' 일본 속담이다. 몇 해 전 그들의 재해재난에 대응 방식 취재차 찾았던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가 기억에 남는다. 'We dont forget 1995.1,17'. 센터 벽면에 커다랗게 새겨진 문구다. 1995년 1월17일,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날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다.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는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만든 곳이다. 고베 대지진 때 행방불명자까지 포함해 6347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2만6804명, 이재민은 20만 명에 달했다. 재산피해도 14조1000억엔. 이날 참사를 계기로 탄생한 곳이 '인간과 방재센터'다. 2002년 4월이다. 센터 대부분은 '기억의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재난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앞으로 일어나는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형 재난은 기억하기 싫은 악몽.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원히 기억해야 또다시 그 같은 악몽을 겪지 않는다는 그들의 지혜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대형 재난이 있을 때만 '반짝 관심'에 그치고 마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같은 유형의 재난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슬픈 현실을 고려할 때 한 번쯤 되새겨야 할 점이다. 큰 아픔을 겪고 나서도 고치지 못하고 특유의 '냄비근성'으로 방치하다 또다시 재앙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학동 참사 유가족들이 바라는 '기억의 방식'도 다르지 않다. '어영부영' '흐지부지' 잊혀지는 게 아니라 명확한 원인 규명, 그리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다. 그 결과 다시는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게 그들이 바라는 기억의 방식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뭐냐. 화한 몇 개 보내는 게 다냐. 대통령부터 관심을 갖고 똑바로 수사하도록 해야한다. (공군)여 중사 사고에 대해 대통령이 분노하셨다. 학동사고는 대통령이 피를 토해야 한다."

얼마 전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마련한 자리에서 유가족이 쏟아냈던 바람이다. '실수가 아닌 예견된 살인이었다''꼬리자르기식 안된다''단순히 적발을 넘어서 다시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현재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꼬리자르기식 조사는 반드시 또다른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제대로 된 조사를 바라는 유가족들의 '기억 방식'이다.

우리가 관심 갖고, 함께 해야 할 것도 있다. '참사'의 교훈을 되새길 추모공간 마련이다.

"'2021년 6월9일'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안전한 도시 광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참사 발생 초 광주 시민·사회단체들이 냈던 목소리다. 그러나 아직 진전된 논의가 들리지 않는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과 처벌이 진행된 뒤 구체적인 논의를 해갈 예정"이라고는 한다. 엄밀히 따지면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원인 규명과 처벌, 중요하다. 하지만 '기억'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잊지 않고 함께할 때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적 참사가 준 학습효과다. 그동안 사회적 참사들은 너무나 닮았다.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나게 되고,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채 참사를 덮어버리기 급급했다. 그렇게 사회적 참사들은 잊혀지고, 다시 반복됐다. 우리가 학동 참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유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 기억하는 추모공간 조성, 꼭 필요하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재해와 재난은 우리가 잊어버리면 그때 온다.' 다시금 되새겨 보는 문구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