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호남 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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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DJ와 호남 대망론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1. 04.27(화) 12:49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을 보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호남 출신 정치인이 다수라는 점이다. 27일 현재 당내 대권경쟁에 나설 것이 확실한 주자는 4명이다. 이 가운데 이재명 경기지사를 제외하고, 이낙연 전 당 대표(영광), 정세균 전 국무총리(전북 진안), 박용진 의원(전북 장수)이 전남과 전북 출신이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유력 대권주자다. 4명을 뽑는 본경선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장흥)이 5·2전당대회 이후 대권 도전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실장이 본경선에 오른다면, 4명의 후보 중 3명이 호남 출신이 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대선정국에 소환되고 있다. 1년3개월 만에 여의도로 복귀한 정세균 전 총리의 첫 행보는 'DJ와의 만남'이었다. 정 전 총리는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 사저' 기념관을 찾았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올리면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찾아 뵌 이유는 다시 김대중으로 돌아가기 위한 다짐"이라고 적었다. DJ를 잇는다는 것은 민주당의 적통을 잇는 것과 같다. 당의 정통성을 가진 'DJ 후계자'라는 뜻이다. 정 전 총리는 지난 1995년 DJ의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의 다짐에선 DJ이후 '호남 대망론'이 읽힌다. '87년 체제' 이후 선출된 7명의 대통령중 호남 출신은 DJ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호남 출신이라고 무조건 호남이 지지하는가. 호남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지역주의 정치에서 벗어나 가치와 실용이 중요해졌다. 최근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광주·전남에서도 이재명 지사에 대한 지지가 꽤 높다. 20~30대에서 그런 표심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호남에선 '제2의 DJ'에 대한 기대 심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낙연 전 대표 역시 동아일보 기자 시절 DJ의 부름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DJ키즈'다.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DJ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출마 권유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공천(함평·영광)을 받아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호남 대망론'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이 전 대표는 4·7재보선 참패이후 전국을 순회중이다. 민심을 듣는 '만인보'(萬人譜) 행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지난 15일 '이낙연계'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친문(친문재인) 당심을 자극했다. 앞서 2004년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손잡고 추진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때는 반대표를 던지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정 전 총리와 이 전 대표의 대권가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다 이 지사에 맞서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다. '이재명 대 호남'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 당의 정신적 고향인 호남의 지지와 당내 집토끼 격인 친문 세력, 친문의 거점인 부산·경남의 지지가 필요한 이유다.

당내 대권 경선에선 주목할만한게 하나 더 있다. 결선투표 제도다. 결선투표란 경선 결과 1등 후보가 과반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면, 1위와 2위 후보가 다시 투표를 해 과반수를 득표한 당선자를 배출해내는 방식이다. 50% 이상 득표한 후보를 내야만 정통성을 얻고, 보다 강력한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후발주자들의 합종연횡을 통한 '막판 뒤집기'가 가능한 제도다. 1차 투표에서 2위에 그친 후보가 타 후보들과 연대하면 역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 정치사에서 결선투표의 '백미'는 단연 DJ다.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진산 총재는 당내 다수파인 김영삼을 후보로 지명했다. 1차투표에서 김영삼 후보는 최다 득표자(김영삼 421표, 김대중 382표)가 됐지만, 무효표가 82표 나오면서 과반 득표를 얻는데 실패했다. 2차 결선투표에서 소수파인 김대중 후보는 이철승계 의원들의 표를 흡수해 역전(김대중 458표, 김영삼 410표)에 성공한다. 김영삼 후보의 손에는 전날 썼던 '후보 수락문' 이 들려져 있었다는 후문이다.

5·2전당대회가 끝난 이후 부터는 당내 잠룡들의 시간이다. 물 밑에 있던 주자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 올라올 것이다. 대권을 쥐게 될 최후의 1인을 놓고 열띤 경쟁에 들어간다. 대선의 길목에서 수많은 변수들과 마주하고, 세력간 후보간 연대도 나타날 것이다. '호남 대망론'에 맞서 '호남 필패론'도 고개를 들 것이다. 호남은 어떤 선택을 할까. 민주당은 오는 9월10일 대선 후보를 뽑는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