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국적, 남녀, 신분 등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분야별로 최고의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어진다. 평화상은 여타 5개 부문과 달리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가 선정해 노벨이 세상을 떠난 날을 기려 매년 12월 10일에 시상한다. 당시 군나르 베르게 노벨평화상 위원회 위원장은 노르웨이 시인 롤드크밤의 "마지막 한방울"이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수상 배경을 설명한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보자.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 하나는 첫 방울이고 /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 / 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네 /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 / 만사를 뛰어넘어 우리가 우리의 /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 / 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일각에서 남북관계 화해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문제제기하지만, 위 시구처럼 첫 물방울이 바위를 뚫기도 하고, 바다를 만드는 것과도 같이 '해보려고 애쓰는 첫 시도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아직 시작이지만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진척이 있기를 바란다. 김대중의 인권과 평화에 대한 용기는 개인적, 정치적 용기로 유감스럽게도 여타 분쟁지역에서는 결여되어 있다. 베르게 위원장은 여기에 덧붙여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김대중의 민주화 여정을 소개한다. 햇볕정책은 고난과 박해에서 나온 산물이다. 즉 5년 반의 수감 생활, 3년여의 망명 생활, 6년 반의 자택연금, 5번의 죽을 고비, 4번의 국회의원 낙선, 3번의 대통령선거 낙선, 의문의 교통사고, 납치와 내란혐의로 인한 사형선고를 받고도 대권 도전 26년 만에 수평적인 정권교체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점을 상기시켰다.
이례적으로 김대중의 용기 있는 행동은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운동가로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우뚝 선 넬슨 만델라(1993년 수상), 소련의 핵물리학자이자 인권운동가로 "진보, 평화공존 및 지적 자유"를 발표한 안드레이 사하로프(1975년 수상), 미얀마의 독재에 항거해 영웅적인 투쟁을 한 아웅산 수지(1991년 수상), 동 티모르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1996년 수상), 동서독 관계에서 동방정책(ostpolitik)을 통해 동서독 통합으로 이끈 빌리 브란트(1971년 수상), 그리고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자격이 충분한 인도의 국부이자 비폭력 저항을 한 민족운동가 마하트마 간디 등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용서하여 반보복정치를 실천한, 구체적으로 보안법, 노조결성권, 남북햇볕정책, 법적-제도적 여권보호 등 인권정책을 활성화했다. 이러한 점이 분단과 적대에 종지부를 찍고 남북 간 자주적 통일 노력이라는 민족사의 새로운 전기를 연 6.15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고 수상 경위를 마무리하고 있다.
당시 평화상 수상에 대해 국격을 떨어뜨리는 아쉬움도 있었다. 수상을 독려하는 로비가 아닌 정략적 차원에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방해 로비가 버젓히 진행되었고, 이미 수상이 훨씬 지났는데도 MB 국정원은 또다시 수상 반환을 기획공작해 노르웨이 시상위원회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어서 여전히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20주년이 되는 각별한 날, 대한민국이 그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가졌던 철학과 이념, 정신과 사상, 가치와 신념이 똑바르고, 남다르고, 모두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의 족적을 기리기보다는 외면하고 방관해온 게 사실이다. 그를 기리는 다양한 시민 활동 및 이에 대한 지원 역시 인색한 측면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광주광역시는 시민평화제를, 전라남도는 김대중-만델라평화사업으로 김대중 인권-평화정신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김대중인권평화의날을 제정하고, 김대중아카데미를 만들고, 국제적 규모의 김대중-만델라평화사업의 대역사를 펼쳐나가고, 연례적인 연찬행사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가 진정으로 국민에 기여하려면 정치 지망생의 시금석, 현실 정치 혁신의 이정표가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공영할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코비드19까지 겹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때 우리는 사표로 내세울 만한 지도자를 추억하게 된다. 수다한 집권 위정자들이 초라하고 불안한 성적표를 남겼다. 하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은 국민이었다. 지금, 다시, 김대중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다. 살아가는 자의 미덕과 한계는 유한한 인생 속에서 역사를 믿는 도리밖에 없다. 일찍이 DJ가 설파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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