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항일운동 주도' 이기홍·장재성 선생 서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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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학생항일운동 주도' 이기홍·장재성 선생 서훈식
민족문제연구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 증정
  • 입력 : 2020. 08.13(목) 17:20
  • 오선우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오는 15일 광복 75주기를 맞아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이기홍·장재성 선생에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제공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오는 15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싸목싸목 다목적홀에서 이기홍·장재성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서훈패 증정식을 갖는다고 13일 밝혔다.

이기홍 선생은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독서회 회원으로 시위에 가담했으며 '백지동맹'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후 고향 완도로 돌아가 항일 농민운동을 전개하다가 1934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투쟁하다 1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재성 선생은 1908년 광주에서 태어나 1926년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의 전신) 재학 중 비밀결사 '성진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독서회를 중심으로 격문을 배포하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검거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945년 9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라남도지부 조직부장이 되었고, 1946년 2월 좌익 세력의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라남도 대표로 참가했다.

이후 여러 차례 이북을 왕래하다가 194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돼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 1950년 7월 총살됐다. 정부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 추서 대상자로 결정했다가 건국준비위원회 활동과 북한에서의 행적 등이 문제가 돼 서훈을 취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서훈패 증정 이후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라는 주제로 특강도 개최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관계자는 "이기홍·장재성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 인물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해방 후 75년이 지나도록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증정식은 시민의 이름으로 선생들의 공을 기리고 국가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