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전쟁 KODEF 안보총서 T. R. 페렌바크 | 최필영, 윤상용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9년 06월 14일 출간
이런 전쟁 | T. R. 페렌바크 | 플래닛미디어 | 3만9800원
"북위 38도 선을 따라 어렵게 포성이 멈춘 지 10년이 지났지만 확정적인 한국전쟁사를 쓰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역사저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가 지난 1963년 이 책의 초판을 출간하며 남긴 서문의 첫 구절이다. 저자의 말대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분류되는 세계 최대의 양대 세력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충돌해 2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 이면에 자리한 암울한 부분을 보여주며 역사적 의미를 단정지을 수 없게 한다.
이 책은 6·25 전쟁을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한 종합적인 역사서다. 저자는 1925년 1월12일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에 복귀해 72전차대대 소속으로 참전했고, 72전차대대에서는 소대장과 중대장을 거쳐 참모 장교가 되어 중령까지 진급했다.
그의 두 번째 저서로 1963년에 출간돼 한국전쟁을 다룬 수작으로 널리 인정받은 이 책은 미 육군사관학교와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됐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이 책 어디에도 드러내지 않았다.
저자는 "6·25전쟁은 전쟁에 대한 미비(未備)와 오판(誤判), 그리고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기묘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6·25전쟁 당시 전쟁에 대비해 훈련, 장비, 기강 면에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전쟁 발발 전 북한의 남한 침공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무시하는가 하면 전쟁 발발 이후 자신만만하게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고,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핵무기를 사용한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두려워 소련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단지 공산 진영의 세력 확장을 막겠다는 봉쇄정책을 내세워 제한전을 펼치는 등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모든 종류의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국가는 국가 정책에서 전쟁을 포기해야 한다.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국민은 정신적으로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제한적인 피비린내 나는 지상 작전에 대비하지 않고 군인과 시민을 그러한 지상 작전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일갈하면서 "오산에서 실시된 급격한 후퇴부터 청천강에서의 철수, 지평리, 임진강, 소양강, 그리고 폭찹 고지에서의 영웅적 저항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 실제로 6·25전쟁에서 일어났고, 이로 인해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한국의 계곡과 고지, 능선 곳곳에서 희생되었다. 저자는 "6·25전쟁의 교훈은 바로 이런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등 한국전쟁사를 종합적으로 다룬 수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 작 '이런 전쟁'이 개정 출간됐다. 저자는 "6·25전쟁은 미국이 제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든 기묘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며 미국을 비판하는 한편 한국전쟁사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한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제69주년 6.25전쟁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와 해외 거주 교포 참전용사 등이 현충탑 참배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 책은 6·25전쟁 발발 이전의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부터 전쟁 발발 배경, 그리고 개전 이후 미군으로서 오산에서 첫 전투를 수행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패배, 처절한 낙동강 방어선 사수,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된 인천상륙작전, 감동적인 서울 수복, 압록강을 향한 유엔군의 진격,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 영하의 추위 속에 벌어진 장진호 전투, 미 해병대의 흥남 철수, 지평리 전투, 의견 충돌로 이어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해임, 글로스터 고지 전투, 전쟁포로 문제, 무려 2년여를 끈 정전회담,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 거제도 포로수용소, 그리고 휴전협정 체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6·25전쟁의 역사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저자는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은 배제한 채 제3자의 입장에서 6·25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전쟁과 인간, 정치인과 군인, 사회와 군의 본질과 속성, 그리고 딜레마를 짚어내는 놀라운 식견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정치 지도자와 군 지휘관들이 내리는 잘못된 결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병사들을 감동적으로, 때로는 고통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정치적 실수와 군사적 실수를 파고들며 이렇게 빚어진 실수 때문에 피 흘리고 죽어야 했던 용감한 영혼을 가진 군인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숫자로 표기되는 사상자의 수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인간 드라마가 이 책 안에 담겼다.